brunch

매거진 빛의 목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 May 04. 2023

담벼락을 타고 올라


끈질긴 나무줄기가

낡은 담벼락을 타고 오른다

그것이 벽의 거칠함인지

혹은 촉수의 완강함인지

도저히 무엇에 엮였다는 건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여러 갈래로 갈라진 줄기는

담벼락을 딛고, 잡고, 붙들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새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벽은 자라지 않으니

그대로 서 있을 뿐이고

어디 나무에서 뻗어온 줄기는

새파란 생명력을 뿜어내며

하늘에 담기고

바람에 쓸린다





줄기는 발을 떼지 않는다

다만 자꾸자꾸 길어질 뿐이다

다만 궁금한 게 있다면

저기 저 위

돌부스러기 흩뿌려진 담벼락 끝에 다다랐을 땐

그만 줄기를 뻗어 낼지

아니면 어떻게 던 자라나고 말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자람이 멈추면 어떻게 되는 것이고

자람이 계속되면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중 무엇을 나는 삶이라 칭해야 하는 것인가

밤새 부스럭 대며

마른 흙 같은 꿈을 꾸었던 어젯밤,

반만큼 자라난 줄기가

반만큼 벽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쪽짜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