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비잔의 보르쉬

러시아 비로비잔

by 카렌

동유럽보다는 러시아 음식이 입에 맞았다. 동유럽을 돌아다닌 끝에 제이가 얻은 것은 음식에 대한 공포였다. “러시아 여행을 하고 나서 음식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어.” 러시아의 음식은 제이에게 이 정도였다. 러시아의 ‘음식도 동유럽의 음식만큼 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고려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김치와 흰밥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려인들은 우리 입맛에 맞으면서 약간은 변형된 음식까지 만들어 두었다. 그 중의 하나가 소고기가 들어간 오이 김치였다. 오이김치가 이렇게 고급져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맛도 일품이었다.

우리가 러시아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게 된 것은 보르쉬였다. 붉은 색의 스프인데 색이 그런 것은 ‘비트’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붉은 색의 무 같은 비트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보르쉬’가 ‘보르쉬’인 것은 비트의 슬라브어가 ‘보르쉬’와 비슷한 발음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붉은 국물에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보르쉬가 만들어진다. 악마의 열매로 여겨졌던 감자도 어느 사이 보르쉬의 재료가 되었고 관상용으로 기르던 토마토 열매도 누군가 집어넣었다. 어떤 이는 소고기를 넣기도 했다. 어떤 이는 좀 묽게 어떤 이는 숟가락으로 저은 다음 잠시 숟가락이 서 있을 정도를 걸쭉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집집마다 된장국의 맛이 다르고 김치찌개 맛에 조금씩 차이가 있듯 보르쉬도 만드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보르쉬의 시작은 우크라이나였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소련의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이민을 가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어쨌든 보르쉬를 맛보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러시아인은 이제 없다.


우리는 아침 겸 점심으로 보르쉬를 먹고 있었다. 식당의 이름은 ‘심하’. 우리는 비로비잔에서 가장 멋진 식당이 ‘심하’라고 생각한다. 비로비잔에 있는 모든 식당을 방문하고 내린 결론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심하’에서만 밥을 먹었다. 식당을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멋진 식당이라는 유일한 증거다. 무엇보다 보르쉬의 맛이 다른 도시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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