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비로비잔에서의 일기

러시아 비로비잔

by 카렌

서유럽사람들은 대개 기독교를 믿는다. 동유럽 사람들은 주로 정교회를 믿고,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도 정교회 사람들이다. 기독교나 정교회나 믿는 대상은 같다. 예수. 예수 그리도도. 예수는 유대인이었다. 역사를 뒤져보면 기독교와 정교회 사람들은 유대인을 많이 괴롭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인을 미워한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옛날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옛날에 아들 셋을 가진 행복한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 집안에는 대대로 아들들을 통해서 전해 내려오는 멋진 반지 하나가 있었다. 그 반지를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그 가문의 풍속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셋. 아저씨는 늙어서 반지를 물려 줄 사람을 정해야 했다. 하지만 늙은 아저씨는 아들 셋 모두를 사랑했다. 반지가 아들 하나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두 아들이 슬퍼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늙은 아저씨는 기술자에게 부탁을 해서 반지 둘을 더 만들었다. 진짜와 전혀 구별이 되지 않았으니 모두 진짜였다. 늙은 아저씨는 죽기 전에 아들을 하나씩 불러서 반지 하나씩을 전달했다. 늙은 아저씨가 죽자 반지를 물려받은 아들 셋은 아버지가 진정 사랑한 아들은 나라며 다투기 시작했다. 각자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는 것이었다. 반지가 그 증거였다. 하지만 어떤 반지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재판관을 찾아간다. 이 세 아들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상징한다. 재판관은 아버지가 진짜 반지를 여러 개 만들어 모든 아들에게 나눠준 이유를 모르겠냐며 야단을 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세 종교는 여전히 다투고 있다.

마르크스. 그의 책 자본론. 사회주의. 그의 사상이 최초로 꽃을 피운 곳이 러시아다. 마르크스는 유대인이다. 그러고 보면 유대인 중에 똑똑한 사람이 참 많다. 에디슨도 유대인이고,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노스트라다무스, 앨빈 토플러도 유대인이다. 지구상에 유대인은 1400만 명 정도 되는데 180명 이상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에 큰 공을 세웠던 트로츠키도 유대인이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과의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 도망 다녀야 했고 멕시코에서 암살당했다. 스탈린은 그를 죽이기 전에 유럽 곳곳에 살고 있던 그의 자식들을 먼저 죽였다. 스탈린은 유대인 트로츠키만 괴롭혔던 것은 아니다. 구소련의 유대인 모두를 괴롭혔다. 독일인, 프랑스인들에게 자유롭게 학교를 세워서 그들 말을 가르치게 했지만 유대인에게는 자신들의 말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세우지 못하게 했다. 끝까지 유대인만을 억압했던 것은 종교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거라 추측한다.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 러시아 정교회는 예수를 믿는다. 구소련의 역대 지도자들은 대대로 유대인을 억압하는 정책을 폈다.


비로비잔에 왔다. 비로비잔은 유대인 자치구의 중심도시다. 유대인을 위한 도시로는 러시아에서 유일한 곳이다. 하지만 이 도시가 유대인을 위해 세워졌는지는 의심해보아야 한다. 구소련의 정책에 따라 유대인들은 이곳으로 이동해야했는데 대개 이들의 생활 중심지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였다. 금융과 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구소련 정부는 이곳에 모인 이들을 농민으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의 의지나 적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이동이 자유로워지자 유대인들은 떠났다. 그래서 지금은 유대인의 비율이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21번 버스를 탔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아무 버스나 타고 여행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금은 1인당 18루블. 우리 돈으로 350원 정도였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제이가 말했다. “이런 식의 여행도 괜찮은데.” “이런 게 시티 투어지 뭐.” 우리는 종점에 내려 동네를 산책했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놀이터에서 세 명의 여자 아이가 그네를 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을 사가는 아이의 목에는 열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열쇠의 용도를 나는 알 것 같았다.

“카페가 어디 있어요?”하고 물어보니 정류장의 여자는 조금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긴, 없어요.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나가야 해요.” 종점이라는 곳. 종점에 사는 사람들. 종점에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한국과 비슷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쓰는 돈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카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양이 카페에 가보는 건 어때?” 어젯밤 나는 그곳이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 밤 10시 거리로 나왔다. 그때 제이는 씻고 있겠다고 했다. 열쇠가 하나뿐이라 밖에서 방문을 잠갔다. 그곳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곳을 향해 직진했다. 어떤 블록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도 강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이곳에 도착한 후 처음 방문한 곳이 강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일광욕을 하거나 말을 타거나 낚시를 하거나 보트를 탔다. 아이를 데리고 내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들도 그런 걸 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으로 가면 돼요?” “얼마나요?” “1킬로미터?” 몇 번 더 물었고 마지막엔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나를 데려다 주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돌아서 올 때는 시간을 재었다. 20분쯤 거리였다. 거리에 사람들은 드문드문이었고 조명은 어두웠다. 동네는 위험하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명이 조금 어두울 뿐이다. 밝아야할 이유가 없으니까. 정말 안심이 되는 동네였다.

우리는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고양이 카페’에 근처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제이가 본 것을 말했다. “정말 낡은 아파트에 백발의 할머니가 멍하니 앉아 밖을 보는 게 보였는데 나무 같았어. 아주 잘 마른 나무.” “내가 그런 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 그때 그분은 어두운 부엌에 앉아 있었는데 멍한 표정에 허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의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물었다. “살아보니 허무하지 않으세요.” 그 분이 대답했다. “아니.” 그분이 그렇게 말했다면 좀 위로가 되었을 텐데. 그때 나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더 슬퍼졌었다. 정말 인생에는 뭔가 있는 건가.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 유심히 인생을 지켜보고 있다.

“이 도시에 이렇게 큰 호텔이 있는 게 신기해.” 제이는 우리가 묶고 있는 호텔을 두고 그런 말을 했다. 정말 나도 그게 궁금했다. 이 마을에 대해 말하자면 시간이 정지된 마을 같다. 아주 오래 전에 말이다. 그래서 오래 전 모습 그대로고 사람들은 무얼 물어도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 같았다.


고양이 카페에서 이것저것 시켜보았다. 나는 웨이트리스에게 추천해달라고 했고 커피와 케이크에 모두 만족했다. 제이도 무척 만족했다. 다른 카페들처럼 풍경을 중요시하지 않는 카페였다. 아마도 그것은 날씨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유리창을 단 곳을 보면 벽 두께가 우리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도 두텁다. 풍경을 안으로 들이기 위해 유리창을 크게 하면 혹독한 겨울을 지내기 힘들지도 몰랐다.

“예수가 유대인인데 유대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나는 제이에게 유대인의 고난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유대인인데 유대인들한테 그럴 수 있었다니 신기해.”하는 문장도 덧붙였다.

제이는 나의 궁금증을 간단한 결론에 이르게 도왔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닐까?”

정말 그게 맞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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