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수리스크
우수리스크에 며칠 머물다보니 지리에 익숙해졌다. 시간은 남고해서 자고 싶을 때까지 자다가 일어나서는 온 동네를 다 걸어볼 심산으로 돌아다녔다. 오후 늦게 호텔로 돌아오면 이제 막 도착해서 어디로 저녁을 먹으러 가야할지 모르는 여행자들을 만나곤 했다. 나는 한국말이 하고 싶어서 “안녕하세요, 이제 오셨어요?” 함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처럼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고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으면서 아주 오랫동안 동포를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를 대해주었다. 나이가 든 분들일수록 나를 더 반가워했다.
그분들은 내게 얼마나 있었는지 뭐 이런 것들을 묻고는 저녁 식사하기에 좋은 장소를 물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종류의 음식을 원하는지 먼저 알고 싶다고 했다. 대개는 무얼 말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해서 그들의 선택을 대신해줄 때가 많았다. 종종 그들의 요구로 함께 가 저녁을 얻어먹으면서 우왕좌왕하는 의견들을 정리해서 대신 주문을 해주었다. 여기는 어떻게 가고, 저기는 어떻게 가고 일정은 이렇게 짜는 게 좋을 거라는 여행 정보도 주었다. 그러다보면 그 중에서 함께 동행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꽃보다 할배”라는 텔레비전 프로의 영향 때문인지 퇴직을 한 동료들끼리 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분들을 모시고 나는 우수리스크를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들을 여행 가이드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도라 공원에는 거북이가 한 마리 누워 있는데 그게 발해 유적이라고 해요. 그런데 전 안중근의 이야기가 더 재밌어요. 하얼빈으로 가기 전 그곳에서 안중근은 사격 연습을 했어요. 여러분들이 다 알다시피 안중근은 암살에 성공하죠.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쓰러지면서 안중근에게 이렇게 말했대요. 바보 같은 놈. 이건 무슨 뜻일까요?”
“제가 스탈린을 좀 싫어하는 편인데 그건 그가 사회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회주의자인데 퇴근 시간을 지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죠. 스탈린은 잠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지요. 스탈린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그의 집무실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다음 퇴근을 했대요. 스탈린이 그렇게 시킨 건지 밑에서 알아서 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야근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스탈린이 몰랐을 리 없잖아요. 하루 8시간의 노동. 사회주의자라면 그 정도는 지킬 줄 알았거든요.”
“제가 러시아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동네마다 레닌광장이 있어요. 레닌을 러시아로 보낸 것은 독일이었어요. 독일은 레닌의 주머니에 두둑히 돈을 집어넣어 주고 멋진 기차에 태워서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러시아로 보냈죠. 당시 러시아와 독일이 전쟁 중이었는데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키라는 거였죠. 독일이 원한 것은 러시아와의 전쟁 중지였어요. 전 이게 약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혁명은 돈 없이 안 되는 거구나. 사회주의 혁명이라도 말이죠.”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이 세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 혁명은 성공을 하는데 레닌의 후계자를 두고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다퉜어요. 스탈린이 승리하죠. 그 이후 트로츠키는 망명 생활을 하는데 입을 가만 두지 않았어요. 돌아다니면서 소련은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방정을 떨었어요. 사실 레닌도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사회주의 혁명은 도시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 중 하나인데 러시아는 당시 농업국가였거든요. 어쨌든 스탈린은 요원들을 보내서 그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했어요. 스탈린은 머리를 굴려서 좀 더 잔인한 방법을 선택하죠. 그를 죽이기 전에 그의 가족들을 한 명씩 먼저 살해하는 거였어요. 유럽에 흩어져 살던 트로츠키의 자식들은 그렇게 먼저 살해되고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암살에도 성공하죠. 트로츠키를 머리를 내려 친 것은 그와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낸 최측근이었어요.”
“우수리스크 사람들은 아파트를 좋아할까요, 주택을 좋아할까요? 정답은 아파트예요. 이유가 뭘까요? 아파트에 수돗물이 잘 공급되거든요. 중심지를 벗어나면 주택들이 많아요. 보기에도 큰 주택들이죠. 그런데 수돗물 공급은 아파트만큼 잘 되지 않아요. 저는 도르 공원에 갔다가 외곽을 좀 더 걸어 보았어요. 한 꼬마가 물통을 두 개 들고 나와서 펌프에서 물을 담고 있었어요. 일을 마쳤지만 끙끙대고 있었지요. ㄱ 자의 쇠를 펌프에서 빼내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물을 퍼기 위해선 그것을 펌프에 끼워야 했고 일이 끝나면 빼서 집에 가져가야 하는데 그게 안 빠졌던 거예요. 꼬마를 도와 그것을 빼내자 꼬마는 그걸 겨드랑이에 끼고 양손에 물통을 들고 기우뚱 걸어갔어요. 아파트에서는 그렇게 물을 길어다 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지요."
내 꿈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이야기를 모으고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그리고 반응을 살피고 생각을 들어 보는 것. 이런 것들을 녹여서 이름을 짓는다면 ‘이야기 컬렉터?’ 정도. 여행지에서 나는 가끔 가이드도 아니면서 가이드처럼 살았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내 버킷리스트를 실행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