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와 보드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by 카렌

술집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들어 주는 것. 그래서 서로가 다정해지는 것. 그런 게 꿈이었는데 그걸 오래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그걸 포기하게 했다. 무엇보다 바텐더가 되어서 매상을 올릴 자신이 없었다. 어느 카페 사장님이 한분 계셨다. 그 분은 아주 근사한 외모를 가진 젊은 남자를 채용했다. 몇 달 후 그 분이 하신 말씀. “매상은 오르고 클레임은 줄었어.” 우리 동네엔 골목길 하나에 정육점이 여러 군데 있다. 그 중 한곳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은 젊고 잘 생긴 남자 셋. 저녁에 가보면 바글바글하다. 손님은 대부분 여자.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제이의 여자 친구가 거길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저긴 장사가 잘 될 거야.” 점점 보이는 게 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찾아온다. 마음은 보이지 않기에 믿을 수가 없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고 미지의 영역처럼 불안하다. 그러니까 보이는 걸 믿을 수밖에.

어쨌든 하루를 정리하기에 술집만한 곳도 없다. 마주보고 앉아야 하는 테이블이 잔뜩 놓인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혼자서도 앉을 수 있는 바가 있는 그런 술집은 내가 늘 바라던 곳이었다. 해변 공원에서 저녁 산책을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곳을 발견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남자에게 담뱃불을 빌리는 여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듯한 느낌이라서 셔츠의 단추를 두 개쯤 풀은 듯한 느낌이라서 좋았다. 계단을 내려갔는데 두 명의 덩치가 나를 가로 막았다. 그들은 내 가방을 검사한 다음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시끄러운 음악. 처음엔 레드불스를 시켰고 그 다음은 클래식 맨하탄을 주문했다. 클래식 맨하탄은 넘기기에 좀 독했다. 금발 머리의 여자들이 바를 가득 둘러싸 앉았고 어떤 남자는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왼쪽에 앉은 여자는 자주 들락거린 모양이었다. 바텐더와 다정하게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른쪽에 두 명의 남자가 미인을 데리고 등장했다. 나는 제이와 이런 데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런데 제이는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른쪽의 남자들과 여자는 작은 잔에 술을 마셨다. 예쁜 여자가 잔을 들고 내게도 건배를 청했다. 혼자 술을 먹고 있는 나를 끼워준 것이 고마웠다. 다시 한 번 예쁜 여자들은 성격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쁠 리가 없었다. 세상이 그녀들을 칭송하고 그녀의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하는데 성격이 부정적일 수가 있나. 그녀들은 이 세상의 불합리한 어떤 것들이 왜 변해야 하는지 알아야할 이유가 없는 여자들이었다. 남자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와이프라고 했다. 그런데 와이프의 허리를 다른 남자가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러시아인들의 연애에 대해 조금 들은 게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에는 여자가 많아요. 전쟁 중에 많이 죽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를 쉽게 생각해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거죠. 넌 왜 이혼하느냐 물으면 더 젊고 예쁜 여자를 만났거든 뻔뻔하게 이렇게 말들을 잘 하죠. 이 사람들에게는 성이 스포츠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그것에 관대하고요. 남편의 친구 앞에서도 속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친구의 아내 앞에서도 팬티만 입고 있기도 해요. 와이프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여자친구라고 하면 대놓고 들이대도 된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이 놈들이에요.”

내가 우산을 거꾸로 놓은 듯한 잔에 클래식 어쩌고 하는 술을 먹고 있을 때 그들은 작지만 길쭉한 잔에 담긴 술을 원샷하고 또 한 잔을 받았다. 또 원샷. 또 한 잔. 나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보드카” 빨간색인 걸로 봐서 딸기가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것을 주문하고 건배를 청했다.

그래 금요일은 이래야지. 이게 금요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술에 취하고 있었다. 배부른 맥주보다는 보드카가 내게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가장 맛있는 보드카는 40도야.” 어디선가 요네하라 마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보드카에 대해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그녀의 말씀에 따르면 보드카의 알코올 농도가 40도라면 1리터의 보드카는 정확하게 935그램이라고 했다. 그걸 밝혀 낸 사람은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였다. 그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보드카 제조기술 향상을 위한 성분비율을 밝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소주기율표를 처음 발견한 위대한 그는 보드카의 도수를 조절하면서 마셔본 결과 가장 맛있을 때 보드카의 농도가 39도도 아니고 41도도 아니고 딱 40도라고 했다고 한다.

보드카는 러시의 대표적인 술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서양의 몇 몇 기업들은 보드카의 우선권을 주장한 적도 있다. 보드카 명칭은 우리 술에만 붙일 수 있으니까 러시아는 빠져 이런 식이었다. 러시아의 우방이었던 폴란드도 이 대열에 끼어들어 우선권을 주장하였다. 하마터면 러시아의 보드카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국제 중재재판소까지 간다. 러시아는 보드카의 출생연도가 1446년임을 증명했고 다른 기업들과 폴란드는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 증명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보드카하면 러시아가 된 것이다.

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인물도 떠올랐다. 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양들의 축제’를 읽고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 속에는 장관들의 아내를 돌아가면서 취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어이없는 독재자 ‘트루히요’가 등장한다. 그에게는 개망나니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람피스’다. 그가 미국 군사학교에서 낙제하자 아버지는 그를 국군 공동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아들은 임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도미니카의 오사마 강변으로 요트를 타고 오고 있었다. 그는 요트 위에서 술 파티를 벌였으며 아버지 앞에 섰을 때는 꼬부라진 혀로 인간의 말 대신 꿀꿀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꿀꿀거리는 소리가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술도 안 먹으면서 너는 무슨 재미로 사나?”

내가 술에 취한 걸 알았는지 옆에 남자가 귀에다 속삭였다. “여기가 마음에 들어?” “응.” “그런데 조심해야 해.” 내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 도시가 무서운 곳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친절한 사람이 가득한 곳이야.” 그가 말했다. “넌 여기서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해. 여자와 돈. 친절한 사람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가끔 어떤 사람들은 너의 목에 칼을 댈 거야.” 그가 손바닥의 끝을 내 목에 대었다. 그리고 “비 캐어플”하고 말했다. 내게 물었다. “호텔이 어디야?” “걸어서 한 십분쯤.” “택시를 타도록 해.” 택시 기사가 더 무서운 것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는 또 손의 날로 자신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누군가 네 목에 칼을 댈지도 몰라.”

시간은 열 두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말 이곳은 위험한 곳일까. 시끄러운 음악 속에 술에 취하는 것이 좋았는데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여자를 조심해. 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조심해야 해. 비 캐어플.” 그는 자꾸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이 점점 가까이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언덕을 지나야했는데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자꾸 옆과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다. 누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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