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어클락,에서 아침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by 카렌

카페를 좋아한다. 거기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 앞에 놓여 있던 이런 문장은 나를 쉽게 유혹했다.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커피는 살 수 있지요.” 돈을 내고 커피를 사면 행복이 찾아올 때가 많다.


오늘은 five o’clock에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 두 잔, 크로와상 두 개.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커피를 앞에 놓고 책을 읽고 있다. 모습을 보니 어느 나라에서 온 여행자다. 사람이 아니라 책과 함께 하는 여행자. 사람들은 그런 여행자가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면 어디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외로운 사람이다.


five o’clock은 영국식 디저트 가게다. 소문대로 가격도 저렴하고 크로와상의 맛도 괜찮았다. 위치는 아르바트 거리. 이 거리는 바다로 이어져 있다. 바다 반대편 아르바트 거리의 끝에 서서 바다를 향해 걸어갈 때 천천히 바다가 넓어지는 광경이 멋있다. 그런데 이 아르바트 거리는 우수리스크에도 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통점은 번화가의 어느 길을 가리킨다는 것. 나는 그 단어가 어쩌면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련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는 거라면 말이다.


소련 시절에는 무엇이든지 다양한 이름이 없었다. 예를 들면 백화점은 모두 그냥 백화점이었다. 러시아 말로는 ‘굼’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신세계 백화점이니 현대백화점이니 롯데백화점이니 하는 다양한 이름이 없었다. 고기나 술, 생선, 시계를 파는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파는지에 대한 정보가 곧 그 가게의 이름이었다. 간판에도 그냥 고기, 술, 생선, 시계 이렇게 적었다. 조금은 삭막해보이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의 특징이라고 한다.


five o’clock에서 내가 주문한 커피는 콩을 볶고 갈아서 드립에 내린 것이 아니라 그냥 커피 가루를 한 스푼 떠서 따뜻한 물에 녹인 것이었다. 불만은 없었다. 나는 분위기를 더 좋아하니까.


제이는 방콕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다. 그녀로부터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태국에서 마지막 날 어머니와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배를 탔는데 이상한데 내려줘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했고 제이는 배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고 우리가 사라지면 가이드가 우리를 찾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제이는 화가 나서 시장에 어머니를 버려두고 잠시 앞으로 걸었다고 한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더란다. 미안해서 어머니에게 다시 걸어 갔다. 밤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어렸을 때 내가 생각났다. 어디선가 나도 어머니와 의견이 달라서 그렇게 옥신각신했다. 그때 어머니는 나를 두고 가버렸다. 겁을 준 것인데 나중에 어머니는 제이처럼 그렇게 돌아왔다.

부모가 늙으면서 왠지 아이와 어른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면 그 사람이 거기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언제까지나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블라디보스토크와 보드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