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바나나 하나와 사과 한 알, 물 한 병을 가지고 하바롭스크 행 기차를 탔다. 다음 날 아침으로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했다. 바나나에 대해선 좀 할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아주 저렴하지만 바나나는 아주 비싼 과일이었다. 소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나나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시장경제로 들어서면서 바나나의 가치는 떨어졌다. 사회주의 시절과 지금의 시절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에게 두 시절의 장단점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물가가 올라서 살기가 힘들어지는데도 바나나 하나만은 가격이 내리더군요.” 비싸서 사먹지 못했던 기억에 인이 박히지 않았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리라.
기차를 타기 전에 우리는 기념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기념탑에는 ‘9288’이라고 적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길이를 뜻하는데 기차는 모스크바에서 끝나지 않는다.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이어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나 더 북쪽으로 이어진다. 여러 명의 인물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손기정, 안중근, 박철환 이런 인물들이었다.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손기정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지는 않았다. 그는 ‘치타’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잘 살고 있다가 난데없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를 해야 했던 고려인들처럼 그가 몸을 실은 곳은 화물열차였다. 어떤 자리에서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보리밭만 보았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호수만 보았어요. 처음엔 신기했는데 나중엔 질렸어요.” 보리밭의 규모와 호수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두 시간을 달리는 동안 우리 객실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4인실을 둘이서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좋아했다. 객차마다 있는 차장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대여해주는 컵을 빌렸다. 장식이 들어간 쇠로 된 컵받침이 인상적이었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서 탁자에 놓고 일기를 쓴다. 곧 우수리스크에 도착할 것이다. 안중근은 우리처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우리와 같은 2등 객실이 아니라 3등 객실이었다. 그리고 우수리스크는 김 알렉산드라가 태어난 곳이다. 이 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광복이후에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 중에 상당수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들은 자칭, 타칭 파르티잔이라고 불렸다. 파르티잔은 ‘빨치산’이라는 뜻이다. ‘빨치산’하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 독립 운동가들의 상당수는 그랬다. 러시아로 넘어와 러시아 혁명에 참전한 이유는 레닌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혁명이 우리의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김 알렉산드라는 이들과 조금 다르다. 그녀는 독립을 바라기도 하였지만 독립을 바라고 사회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회주의자였다. 그녀는 우랄 지방의 벌목장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임금 체불을 겪고 있던 고려인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삶에 먼저 눈 뜬 사람이었다. 그녀는 하바롭스크에 있는 아무르 강에서 혁명에 반대하는 군대에 붙잡힌 후 사형 당했다.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은 “조선의 자유와 독립 만세!”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자유 만세!”였다. 그녀는 한국인 최초의 러시아 공산당 당원이었으며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인들은 비석을 세웠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18년 그는 영웅적으로 죽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전화를 하면 국제 전화요금을 내야할까, 국내 전화 요금을 내야할까. 이런 문제를 내게 낸 남자가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둘 다 놀라운 일이에요. 국제 전화요금을 받는다면 한 나라에서 그렇게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랄 것이고, 국내 전화 요금을 받는다면 그렇게 먼 거리를 그렇게 밖에 받지 않는 다는 것에 놀랄 일이죠.” 정답은 국제 요금이라고 했다. 나는 정부가 그런 요금을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에 쉽게 수긍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의 시차는 7시간. 국내 요금은 우리처럼 시차가 없는 곳에서나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또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이 느리다고 하는데 사회주의 탓도 있겠지만 시차 탓도 있어요. 모스크바의 시간에 7을 더해야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간이 돼요. 모스크바에서 팩스를 보내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사람들은 퇴근을 한 상태일 때가 많아요. 그들이 출근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다음 날 그것을 확인하고 일 처리를 해서 보내면 모스크바 사람들은 출근 전일 때가 있죠. 러시아에서는 불평을 해서는 안 돼요. 불평을 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변하겠어요? 조금도 변하지 않아요.”
우수리스크에 기차가 도착하자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를 맞아서 몸은 젖어 있었다. 내가 러시아인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며 몇 마디 더 해보려고 했으나 그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맞은편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제이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이가 2층으로 올라가고 내가 침대를 펴자 그는 웃통을 벗었다. 넓은 혁대를 차고 있었는데 그 혁대가 바짝 뱃살을 받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뱃살이었다. 그의 몸이 젖은 것은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뛰어왔는지 땀도 흥건히 흐르는 것 같았다. 객실 안 가득 러시아 남자의 냄새가 퍼졌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이 냄새가 몸 냄새인지 화장품 냄새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 누워 각자의 목적지로 실려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