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도서관

러시아 하바롭스크

by 카렌

“만일 천국이 있다면 말이야. 그건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거야. 이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보르헤스.”

내가 보르헤스에 대해 말하게 된 것은 제이가 도서관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반갑고 놀라운 도서관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의외의 위치 때문이었다. 꼼스몰스까야 광장 바로 옆이라 할 수 있는 곳. 성모승천교회 근처였다. 근처에는 독일 복장을 한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파티를 즐기는 펍이 있었다. 젊은이들이 몰려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는 서울의 명동이나 종로 또는 홍대, 압구정동에서도 가장 땅값이 나갈만한 그런 곳에 공공 도서관이 있었다.


우리는 도서관을 사랑한다. 이사를 몇 번 다닐 때마다 낯선 부동산 업자에게 처음 물어 본 말은 “근처에 도서관 있나요?” 이것이었다. 도서관이 없으면 이사를 접었다.


도서관의 입구를 두고 양 옆에 선 후 우리는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천국의 도서관’이 떠올랐다. 일본 영화인데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천국의 도서관’에서 기다리게 된다는 설정이었다. 의외의 사고를 다하거나 자살을 한 사람들은 원래 살아야할 나이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대기하는 것이었다.


도서관 로비에 수염을 기른 노인이 소파에 앉아 책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조용히 천국의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천국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을 나는 잘 보지 못했다. 한번은 기차에서 그렇게 책에 빠진 노인을 보았다. 그는 몽테크리스토백작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일요일이었고 나는 동네 근처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뭐하냐는 질문에 내 답을 들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도서관 다니냐?” 아마도 친구는 도서관이란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르헤스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우린 함께 천국에 못 갈 거야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은 서로 다르니까.”


“도서관 좀 구경할게요.”

우리는 인포메이션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그렇게 하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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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에서 사서가 책을 분류하고 번호를 적은 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하바롭스크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어떤 카드 속에 번호로 요약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 번호를 따라 가면 이런 기록들이 있을 것이다.


“한 때 이곳은 청나라 땅이었던 적이 있음. 아편전쟁으로 정신없을 때 우리가 이곳을 빼앗았지. 이 도시에서 유명한 인물은 아무르스키(1809-1881), 하바로프(1603-1671). 둘 다 정치가이자 탐험가였음. 아무르스키는 황제에게 시베리아 철도를 처음 제안.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극동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청나라 사람들을 쫓아낸 후 고려인 이주를 허락함. 하바롭스크란 도시 이름은 ‘하바로프’에서 유래. 이곳에 처음 도착한 러시아 탐험가들이 우리 대장님 이름을 붙이자고 해서 그렇게 된 것임. 하바롭스크 역에서 내리면 하바로프의 동상이 보임. 아무르스키의 동상은 아무르 강 전망대 맞은편에 있음.”


“러시아의 탐험가들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향토 박물관을 가보면 알 수 있음. 그곳에는 동물원 같은 방이 있음. 동물원과 다른 점은 박제된 동물들이 있다는 것. 곰, 호랑이, 사슴 그런 것임. 이런 동물들은 ‘모피’라는 옷을 입고 있었음. 유럽인들에게 그 옷은 사치품이었음. 그래서 그것을 빼앗기로 함. 동물의 옷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그들을 죽여야 했음. 동물들의 수난사가 벌어짐. 탐험가들은 시베리아를 넘어 알래스카까지 감. 알래스카에 살고 있던 동물들 역시 옷을 벗어 주어야 했음.”


현명한 어떤 이는 이런 기록을 남겼을 지도 모른다.

“모피라는 사치품 때문에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 살고 있던 몽고인종들은 고난을 겪게 된다. 누군가 사치를 부리기 위해 누군가는 죽는다.”


러시아의 영토 축소 과정에 대해선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훗날 알래스카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주인이 바뀐다. 러시아는 값싸게 이 땅을 미국에 넘겼는데 그것도 모피 때문이었다. 알래스카에서 원주민이 잡아온 모피는 유럽까지 운반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다. 장사꾼들은 여러 방식으로 손익분기점을 계산한 다음 그걸 파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차르에게 의견을 낸다.”


그 과정에 다소 비관적이었던 이는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훗날 알래스카에서 엄청난 지하자원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를 미국에 넘긴 것은 우리의 실수였다. 봐, 내 말이 맞잖아.”


이런 기록들을 다 찾아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러시아어에 재주가 없었다.


한 남자의 움직임을 통해 도서관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어떤 책을 원한다고 하자 사서가 분류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었다. 그것을 들고 2층으로 간 남자는 어떤 여자에게 그 표를 주었다. 그러면 여자가 안으로 들어가 책을 찾아와 빌려주었다. 우리 도서관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다소 불편해 보이지만 그런 형식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도서관에는 책을 빌리러 오거나 잠시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이 다였다. 우리처럼 입사 시험을 위해서 자리를 잡거나 중간고사 때 붐비거나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나올 때보니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 앞에서 안내를 맡은 직원도 책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이 있는 한 여긴 천국 비슷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면서 제이가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줘서 다행이야.”

도서관 이야기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우리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우리는 함께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은 같은 곳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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