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흑빵 이야기

러시아 비로비잔

by 카렌

우리가 브로쉬 하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샐러드 하나, 커피 두 잔을 시켰을 때 6명의 중국인이 우리처럼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옆자리에 도착했다. 그 덕에 한 명밖에 없는 여자 종업원은 꽤 바빠야 했다. 조리실은 1층인 모양이었다. 1층과 2층을 부지런히 오가며 여자는 음식을 날랐다. 쾅쾅쾅 내려갔다가 쾅쾅쾅 올라오는 소리가 무척 분주하게 들렸다. 그녀는 우리를 중국인과 함께 온 손님으로 착각하고서는 테이블에 브로쉬를 하나 더 놓는 실수를 범했다. 물론 우리는 “이건 우리 게 아니에요” 하고 거절했다.


차려 놓고 보니 중국인들의 식탁은 대단했다. 1인당 하나의 브로쉬, 하나의 볶음밥 같은 것, 하나씩의 돈가스 같은 것. 그리고 빨간 음료수 한잔씩. 마지막으로 흑빵 한 바구니씩. 그들은 음식의 절반쯤은 남겼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너희들의 식탁은 정말 굉장해. 우리 식탁을 봐. 초라해.”

“고마워.”

학생이 대답했다.

“어디서 왔니?”

“하얼빈.”

“차로?”

“응.”

“얼마나 걸려?”

“6시간.”


주문한 아메리카노의 향은 특별했다. 특이한 맛이었고 괜찮았다. 가루를 탄 것이 아니라 기계로 내린 것이었다.

나는 그들 테이블에 남아 있는 흑빵이 먹고 싶었다.

“거기 남은 것 같은데 내가 먹어도 돼?”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미안한데 그 흑빵 사진 좀 찍어도 돼?”

흑빵을 달라고 할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서 사진을 찍어 둔 다음 앞으로 그걸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종업원을 불러 그들 테이블에 있는 바구니를 가리키며 “우리에게도 흑빵을 주세요.”하고 주문했다.


흑빵의 가격은 무척 저렴했다. 한 바구니에 우리 돈 몇 백 원밖에 하지 않았다. 흑빵이 이렇게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배불리 빵을 먹을 수 있는 사회’라는 지난 사회주의 국가의 정책이 어느 정도 이어져 오기 때문이다. 그런 정책이 소련 경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빵 값을 극단적으로 낮추기 위해 정부는 밀을 계속 수입했고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에 많은 보조금을 지불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흑빵에 대해서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메리카노와 흑빵을 먹으면서 제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러시아의 흑빵은 특이한 맛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신맛이야. 느껴지지? 독일의 흑빵보다 다섯 배쯤 더 강하대. 기독교가 로마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가 서로 분리 된 것은 흑빵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교과서에는 삼위일체설의 해석과 마리아 숭배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라고 적혀 있지만 말이야.”

“흑빵이 왜?”

“기독교 성찬식에는 빵을 사용하는데 흑빵을 쓸 것이냐 흰빵을 쓸 것이냐를 두고 크게 다투었대.”

“결과는?”

“그 당시 교황(레오 9세)이 결정을 내렸지. 성찬식에는 신맛 나는 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런 논쟁(1054년)이 벌어지기 100년 전부터 비잔틴 지역과 러시아 교회에서는 흑빵을 사용하고 있었거든. 교황의 그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교회들은 정교회로 독립을 해 버렸지.”

“정말 흑빵 때문이었을까?”

“전설 같은 거지 뭐. 원래 뒷이야기들은 믿을 수가 없는 거잖아.”

“사실이라고 기록된 역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만족감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저녁도 이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어제도 오늘도 모두 만족이었다. 식당의 이름은 ‘심하’. 유대인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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