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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Aug 19. 2020

고양이 그림


   형에게 고양이 그림 하나 그려 달라고 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낸 문자였다. 늦은 밤에 보낸 문자에 대한 답이 새벽에 와 있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사는 형은 고양이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 한동안 sns에 형의 그림이 올라왔는데 놀라서 넘어질 지경이었다. 나는 가끔 렛트가 멈칫하고 있을 때 정적인 그 장면을 한 장의 그림으로 느끼곤 했다. 형의 그림에는 살아있는 고양이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금방 동적인 움직임을 만들 것 같은 작품이었다. 게다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몸을 늘였다 줄였다 뭉쳤다 하는 고양이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나는 원인 모를 기침을 오래 달고 살았다. 두 곳의 대학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해주었는데 하루에 세 번 한 달치나 되는 것이었다. 한 번에 먹어야 할 양도 꽤 많았다. 병명을 알 수 없는데 처방해주는 의사의 약은 무엇일까. 그냥 이거라도 먹어보자는 뜻일까. 몇 번 먹지 않고 그 약들을 모두 버렸다.        


   어디선가 도라지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생활에 무감각한 편이라 도라지즙을 따로 판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시장에 가서 도라지를 사 왔다. 비싸지만 국산을 샀다. 내가 시장에 까지 가서 그것을 사올거라 상상하지 못했지만 오래된 기침은 나를 절박하게 했다.      

   혹시 도라지를 까본 적이 있는가. 껍질을 벗기면 사정없이 달라붙는 즙들이 나와서 다음 칼질을 하기 힘들어진다. 손에 붙은 것들은 비누로 몇 번 씻어도 손은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한 소쿠리가 넘던 그 도라지를 나는 형과 함께 깠다. 어쩌다 형이 내가 살던 집 근처를 지나게 되어서 찾아 왔는데 소쿠리를 보고 내 사연을 듣더니,

   ”같이 까자.“

   고 했다.

   그 도라지를 먹고도 내 기침은 낫지 않았다. 일을 1년 쉬고 나서야 기침은 물러갔다.      


   그 날은 늦은 밤이었다. 추위가 다 가지 않은 봄밤이었다. 그날 거실 한 벽에 붙어 가끔 등을 쉬던 우리를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너무 추웠다. 햇볕 아래 자주 가 서 있었지만 가슴에는 얼음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춥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고양이가 치료해줬어.”

   형은 소쿠리를 자기 앞으로 당겨 쉬지 않으며 말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 땐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좋아. 그것도 사랑이야.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지. 근데 고양이는 더 많은 사랑을 줄 거야. 고양이에게는 특별하게 바라는 게 없으니까. 그냥 함께 있으면 되는 거니까.”  

   나는 그때 처음 고양이를 키우는 남자를 만났다.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기도 했지만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씨앗은 그때 떨어졌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고양이 그림이 생길지 모른다. 나는 형에게 십 년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형은 고양이에 대한 산문이 끝나면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기다림이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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