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로 시커먼 물체가 막고 있다. 자동차 보닛이 앞 유리창을 친 것이었다. 운전사 앞쪽에 배구공만 한 균열이 생겼다.
‘휴’, ‘아’,
저마다 터지는 짧은 신음소리.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
우유니 사막으로 가는 중이었다.
운전사가 내렸다. 미안하고 당황한 그의 표정에 우리도 같이 미안해진다.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트렁크를 열어 연장을 꺼내더니 보닛을 고정시킨다. 아귀가 잘 맞지 않은 보닛은 덜컹거리기는 했으나 벌떡 일어서지는 않았다.
낮은 관목 숲 사이로 차는 계속 달린다. 덮개에 놀란 기사가 차를 천천히 몬다. 덕택에 주위의 풍경이 더 잘 들어온다. 맑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둥실 흘러간다. 이역만리에 와서 어릴 적 보던 하늘을 보았다. 서울에서 저런 하늘을 본 적이 있었든가.
라마떼가 느긋하게 관목 숲을 뜯는다. 어떤 놈은 길바닥에 배를 대고 앉아서 되새김질을 한다. 차가 가거나 말거나 고요하고 편안한 표정에 변함이 없다. 아까부터 붉은 풀밭이 자꾸 나타난다. 개펄에 야생하는 칠면초 같은데 여긴 사막이다. 키도 훨씬 크다. 저게 뭐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료조사차 읽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되짚었다. 아, 퀴노아 밭이었다. 마침 붉게 물든 밭에서 몇 사람이 열매를 훑고 있었다. ‘모든 곡식의 어머니’라는 퀴노아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타민 등 여러 가지 영양소가 풍부해 나사에서 우주식물로 선정한 슈퍼푸드다.
지금이 3월 말이니 이곳은 수확의 계절이다. 어디서나 추수하는 모습은 정겹다. 수수밭 생각이 난다. 콩밭 둘레에 할머니는 수수를 심었다. 키 큰 수수로 콩밭에 울타리를 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타원형으로 달린 퀴노아 열매가 수수 열매와 닮은 것도 같다.
관목숲이 점차 없어지고 한 뼘도 안 되는 풀밭이 이어지더니 그마저 드문드문 메마른 땅이 이어진다. 공깃돌만 한 자갈밭이 있는가 하면 단단한 모래로 된 곳도 있다. 사막이라고 다 같은 사막이 아니다.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 지루할 틈이 없다.
사막 중간에 차들이 멈춘다. 여러 모양의 바위가 우리를 기다린다. 그 틈에 운전기사는 다른 기사들과 함께 차를 다시 손본다. 보닛이 좀 더 단단히 고정되었다.
강이라고 하는 곳에 냇물이 한 줄기 흐른다. 양동이로 몇 개 퍼부은 듯한 양의 물이 돌 틈에서 흘러간다. 이제부터 오프로드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길이 아닌 곳으로 차가 덜컹거리며 간다. 어떤 사람은 무섭다고 눈을 질끈 감는데 나는 기다렸다는 듯 스릴을 즐겼다.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운전하며 이 요동을 즐기고도 싶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야생이 튀어나온다. 그래 이 맛이야. 뚜껑이 열려 놀랐던 새가슴은 사막의 모래 속으로 날아갔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