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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Aug 14. 2021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부고

친구 남편의 죽음

  새벽 3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이 밤중에',라고 생각하다가 서울은 지금 오후라는 걸 문득 깨닫는다. 나는 지금 남미 배낭여행 중이고 브라질 해안 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에 와 있다.

 친구 S였다. 룸메이트가 깰까 봐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린다는 S는 전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H의 남편이 어젯밤에 운명했다고 한다. 뭐라고?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에 H와 남편을 만났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친구의 말이 이불속에서 바스락거린다. 병원에서 3일 만에 운명했다는 말만 확실히 알아들었다. 자세한 것은 서울에 가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오만 생각이 실타래처럼 엮어진다. 마음이 여린 H가 얼마나 상심하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죽는데 순서가 없긴 하지만 평소에 건강했던 사람이라 더 슬펐다. 우리가 벌써 남편을 잃을 나이란 말이지? 날이 밝으면 H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잠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단짝이었다. 비교적 잘 사는 H의 집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방과 후에 출출했던 우리는 곧잘 그 애 집으로 몰려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직장과 결혼으로 나는 서울에서 H는 고향에서, 서로 바빠 연락이 뜸할 때도 우리 사이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필요할 땐 언제든지 마주 보고 함께 가고 있었다. 그런 친구였는데 인생에서 가장 슬플 때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아는 분이 퇴직을 하고 세계 여행을 나섰다가 아버지의 상을 당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에 있어서 처음엔 연락이 잘 안 되었고, 연락 후에도 비행기 표 때문에 귀국에 6일이나 걸렸다고 했다. 남아있던 가족들은 장남이자 외아들인 그를 기다리느라 냉동고에 시신을 몇 날 모셨다가 큰일을 치렀는데, 조문객들에겐 3일장에 맞춰 돌아간 날짜를 말했다고 한다.


 뒤척거리다 보니 날이 밝아온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미국에 있던 아들이 늦게 와 이제 입관 절차가 끝났다며 쉰 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자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병원에 갔는데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에 운명했다는 것이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쉽게 갈 줄 몰랐다며 울었다. 돈도, 사회적 지위도 중환자실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숙소 앞 공원에 아이들 몇이 뛰놀고 있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 총기 사고가 자주 나는 나라, 온통 불안 투성이라는 브라질의 아이들은 저렇게 밝게 노는데, 치안도 안전하고 총기사고도 없고 의료기술 수준도 높은 우리나라의 멀쩡하던 사람은 갑자기 죽었다.

 여행 일정 중에 이곳이 있다는 것을 안 동생이 그 위험한 지역에 왜 가느냐고, 자기네 상사 직원들이 유일하게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를 하는 곳이 이곳이라며 호기심 많은 누나를 염려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하는 것인데 지나친 근심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겠다. 나는 걱정을 내려놓고 남은 일정을 보냈다. 리우의 명물 구세주 그리스도 상에서 H가 슬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기를 기도하고, 코파카바나 해변에서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파도가 싣고 멀리 달아나기를 기도했다.


 갑자기 날아온 부고는 죽음이 우리 곁에 늘 머문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 주었다. 친구의 일상이 얼른 회복되기를 빌며 나의 소중한 하루를 갈무리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늘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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