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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Aug 26. 2021

함께 멀리

스리랑카에서

 여행은 낯선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일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는 여행은 언어와 풍속, 생김새가 다른 장소에 나를 내려놓는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삶을 느껴보고 체험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방인의 긴장과 자유를 만끽하며 보내는 시간들은 나를 춤추게 한다. 어떤 때는 호기롭고 가끔은 위태한 일정들은 잠자던 세포를 깨운다.


 작년 2월에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코로나가 막 터진 이후라 텅 빈 공항을 빠져나갈 때는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우리가 거기서 보낸 2주 동안 한국은 환자가 막 늘어났다. 30명 안쪽이던 환자가 1000명에 육박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펜데믹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감염자는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 집중되었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 작은 섬나라는 발 빠르게 우리를 차별했다. 공항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피하고 타고 갈 비행기는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스리랑카 북중부에 있는 미네리야 국립공원은 코끼리 사파리로 유명하다. 원래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가 국립공원으로 재 지정된 이곳은 야생동물의 왕국이다. 약 400마리의 야생 코끼리와 공작을 비롯한 수많은 조류들과 여우와 버펄로 등이 서식한다.

 긴 시간 보호되어온 숲은 건장한 청년처럼 성성한 에너지를 뿜었다.

 낮은 관목 숲에 희미하게 난 바퀴 자국을 따라 지프차가 움직인다. 동물 따윈 아무래도 좋다. 나는 숲 자체에 반했다. 고요하고 순수에 빠진 숲에서 가끔 새가 울고 푸드덕거린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조화롭게 밀집되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숲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했다. 이따금 우뚝 솟은 회색빛의 단단한 바위는 햇살을 사방으로 튕겨낸다. 노랗고 하얀 꽃들이 보란 듯 나타나는 풀밭을 달리던 몇 대의 차들이 갑자기 한 지점으로 모인다. 풀밭에 코를 연신 들이미는 몇 마리 코끼리가 눈앞에 있다. 기다란 코로 서로의 머리를 비비며 장난을 치는 코끼리는 귀엽기까지 하다. 소리 없는 감탄만 흐를 뿐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두가 말이 없다. 우린 예의 있는 침입자들이다. 덮개가 없는 지프차의 아치형 받침대를 잡고 사방을 휘돌아 본다. 청보라색 꼬리가 두드러진 공작새, 마른 가지에 앉아 있는 독수리,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을 보며  달린다.


 넓은 초지에 투어 차량이 몰려있다. 우리 차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오른쪽 숲에서 코끼리들이 이동하는 중이다. 선두에 나선 대장 코끼리 뒤로 스무몇 마리가 나라비를 서서 느릿느릿 움직인다. 아기 코끼리도 몇 마리 보인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나도 손을 뻗었다. 갑자기 짧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코끼리 한 마리가 투어용 지프차의 앞부분을 머리로 가볍게 들이밀고 간다. 나중에 그 차를 보니 앞 범퍼가 심하게 찌그러졌다. 덩치만큼 대단한 힘이다.  

 마지막 코끼리가 숲으로 사라지자 차들은 다시 흩어진다.

 숲의 주인들이 나타날 때마다 운전사는 차를 멈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호수에는 흰 새들이 부리를 쪼아댄다.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숲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는 제법 경사진 바위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몇 백 평 되어 보이는 넓은 암반 꼭대기에 원두막이 있다. 짚으로 지은 2층짜리 전망대다. 햇살을 등지고 바위에 올라 주위를 살핀다. 시선이 닿는 곳까지 온통 푸른 정글이다. 이 정글밖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잠시 잊는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숲의 겉모습은 완벽한 평화다. 사람들의 세계도 우주에서 보면 이토록 평화롭게 보일까?


 문득 자연의 시간은 무한함을 깨닫는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자연을 다스리고 길들이려 하는 것은 욕심일까, 능력일까. 저 밀림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못하듯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우리 뜻대로 자연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삶에 필요한 최대치를 구하지 말고 딱 필요한 만큼만 자연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로 공존한다면 함께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아름다움을 후손들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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