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고 있던 사람들이 나의 외마디 소리에 수런거린다. 옆자리의 친구는 눈을 감은 채 계속 성호를 긋는다.
우리는 메스티아에서 5박 6일의 트레킹을 마치고 ‘마슈르카’라는 승합차를 타고 트빌리시로 가기 위해 코카서스 산군을 지나는 중이었다. 우리나라의 봉고차 같은 이 차는 조지아의 대중교통 수단의 하나이다.
주요 기차역의 주차장에는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손님을 기다리는 ‘마슈르카’ 들의 호객행위가 볼 만했다. 정해진 시간표도 정확한 노선도 없이 기차역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서로 잡아끌었다. 정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전사는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애를 쓰고, 드디어 좁은 통로까지 사람들이 들어차면 기사는 비로소 시동을 걸었다. 메스티아에 짐짝처럼 실려갔던 터라 이번에는 쾌적한 이동을 위해 차를 대절했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세차게 내리고 길은 점점 더 사나워졌다. 빗물을 마음껏 먹은 산은 군데군데 헤벌레 벌어져 잔돌이 섞인 토사를 길바닥에 속수무책으로 토했다. 길을 반쯤 덮은 흙과 돌더미를 피해 운전기사는 차를 벼랑 쪽에 바짝 붙인다. 이 비에 이 지경이면 눈이 오는 겨울철엔 이 길을 어떻게 다닐까? 스키시즌인 겨울에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했다.
날씨도 궂은데 출발 5분쯤 후에 걸려온 전화를 끊었다 받았다 하며 한 시간째 마음 졸이게 하던 그는 나머지 손을 놓고 빗물로 부옇게 된 앞쪽 유리창을 닦았다. 순간 차가 휘청했다. 저 아래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입을 크게 벌린다. 게다가 S자 커브길에 상당한 속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커브길에서 운전대를 놓음으로써 자신의 운전실력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지켜보던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넬라’라고 기사에게 말한다. 구글 오프라인 번역기로 확인한 ‘천천히’라는 조지아 말이다. 떨고 있는 우리를 힐끗 보는 것 같더니 마침내 통화가 끝났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밴을 예약하기 전에 운전기사가 충분히 주의하여 안전운전을 한다는 조항을 명시해야 하고, 운전 중 휴대전화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반드시 넣어야 하며, 안전벨트가 잘 작동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의자 밑에 혼자만 안전하게 숨어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는 벨트잡아당기기를 포기하며다음에 이곳을 방문하겠다는 지인에게 전해줄 주의사항을 마음에 새긴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날이 개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두 손으로 핸들을 조작 중이다. 길도 평탄해졌다. 지옥에서 뒹굴던 마음이 스르르 제 자리를 잡는다. 주위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7월의 조지아는 광활한 꽃밭이다. 어딜 가나 흐드러지게 핀 꽃이 우릴 반긴다. 꽃이 많으니 대규모 양봉장도 자주 나타난다. 수백 개의 벌통이 산기슭에 늘어서 있는 풍경은 장관이다. 꽃의 양으로 보아 벌통은 곱으로 놔도 충분할 듯하다. 내 생애 볼 꽃들을 여기서 다 보았다고 해도 될 만큼 가득한 꽃들의 천국에서 오늘은 진짜 천국으로 갈 뻔한 서늘한 시간을 보냈다.
쉬카라 빙하에서 만난 가이드가 생각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빙하 안쪽으로 다가가자 그는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쉬카라 빙하는 속으로 녹고 있는 빙하여서 언제 어디서 유빙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꼭 가이드의 안내 하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 만지거나 발을 디디면 바로 안전사고와 연결될 수 있다며 그는 흥분했다. 만약 사고가 나면 그 팀의 가이드는 면허가 취소되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며 팀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거듭 당부를 하였다.
그날 쌓였던 안전에 대한 믿음이 오늘 갈가리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밖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데 외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우리나라가 많이 그리워진다. 당연하게 누리던 우리나라의 편리한 교통시스템에 절이라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안전은 또 어떤가. 안에서 볼 땐 좀 부족해 보이지만 밖에서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땡큐다.
아, 간담을 서늘하게 한 그 운전기사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맞다. 그런 곡예운전에도 나를 무사히 집에까지 오게 했으니까. 그렇지만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을 나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