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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30. 2021

아무도 모른다

메주를 만지며

고향집 마당에서

예닐곱 살 때의 막냇동생

주머니 속 사탕 같은

햇살을 받으며

메주를 만진다

납작하고 반들반들한 돌멩이 위에

잘 뜬 메주를 올려놓고

망치로 탕 내려친다


노란 곰팡이가  꽃으로 피었다

푸른곰팡이가 잎처럼 피었다


이 잘생긴 것 좀 보라

황갈색 고운 빛깔  메주

속을 가르니

검은 연기가 풀썩거린다


썩어도 속속들이 썩었네


엉거주춤 의자에 걸터앉아

참견하던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


네 속이 꽃처럼 이쁜지

내 속이 먹빛 깊은 동굴인지


아무도 모른다


멀쩡한 얼굴로 웃는다고

속조차 맑은지

아무도 모른다



잘 뜬 메주 속의 곰팡이가 그렇게 예쁜 줄 몰랐다.

어떤 것은 노랗고

어떤 것은 파르스름하게

꽃이 피었다

유난히 빛깔이 고운 메주 속을 가르니

검은 연기가 풀석거렸다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득

우리네 삶도 저렇게 완벽한 가면을 쓸 수 있겠다 생각하니 전율이 흘렀다


누가 가슴속에 꽃을 품고 있는지

누가 속이 썩어

건드리면 먹빛 연기를 토해낼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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