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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Jul 31. 2021

공작선인장

낯선 곳에 간 그녀에게 행운을

  단골 미용실을 놔두고 길 건너편 몇 집 걸려 하나씩 있는 미장원 중에 하필 그 집에 들어간 것은 유리창 너머 푸른 화초 때문이었다. 팔손이, 행운목, 해피트리 등 키 큰 관엽수와 활짝 핀 공작선인장이 너무 탐스러워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침 펌을 할 때가 되었다.


 안쪽에는 다육이들 세상이었다. 높이를 달리하는 긴 의자에 두 개에 제 입맛대로 고른 도자기 화분 속의 다육이들이 오동토동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어서 오세요’

 펑키 머리에 핏기 없는 새하얀 얼굴을 한 미용사가 짙은 아이라인이 그려진 눈을 꿈벅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화분을 쳐다보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자리가 너무 좁지요? 제가 꽃을 좋아해서… 꽃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요’하면서 말을 흐린다.

 ‘아뇨. 좋은데요’라고 말하자 금세 밝은 표정이 되어 ‘어떤 손님들은 싫어하세요. 자리를 너무 차지한다고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미용기구가 놓여 있는 이동식 작은 선반, 수건 등을 넣어두는 갈색 5단 서랍장, 여성잡지 몇 권과 동네 상호 전화번호 책이 놓인 테이블과 펌을 한 듯 검은 털이 무성하게 꼬불거리는 커다란 개가 4인용 소파의 절반을 차지한 데다 화분이 한쪽을 꽉 채우고 있으니 좁다는 말을 할만했기 때문이었다.

 퍼석하게 갈라진 끝을 다듬고 세팅을 마는 동안 미용사는 내내 말이 없었다. 고객의 호구조사를 은근히 하면서 귀찮게 하는 미용사들에 비해 이 말없는 미용사가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불고 진눈깨비가 간간히 뿌리는 겨울이었다. 미용실 앞에 포장마차가 있다. 지나치는 행인도 많지 않은 골목길에 웬 포장마차?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한눈에 보기에도 서툴러 보이는 손짓으로 하얀 사각통에서 반죽을 떼어 설탕과 참깨로 버무린 소를 넣고 기름판 위에 굴리고 있었다. 서투른 손 매무새와 달리 제법 고소한 냄새가 났다.

 무심한 듯 염색약을 빗질하는 미용사는 연신 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인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호떡을 주문하고 맛있다고 하자 얼굴에 미소가 넘친다.

 ‘딸이 남자 친구와 호떡장사를 해보겠다고 해서 가게 앞에 하라고 했어요. 어제 개업했는데 제법이죠?’ 핏기 없던 얼굴에 처음으로 홍조를 띠며 그녀가 말했다.


 그다음 해 어느 봄날, 20대 초반인 듯한 통통한 청년이 들어선다.

‘그래, 아빠 만나니까 어땠어? 아빠 잘 계시대? 아픈 데는 없고?’

‘응, 엄마도 잘 계시냐고 물었어.’

 아, 꽃에 대한 과한 사랑과 평소의 말없음이 약간 이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다 몇 달만에 미용실에 들렀더니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여기 미용사 분은?”

“아, 미국에 갔어요. 안 오신지 오래되었나 봐요. 간 지 꽤 되었는데...”    

 머리를 다듬으면서 새로운 미용사는 연신 말을 늘어놓는다. 미국의 동생이 오라고 했나 봐요. 그 나이에 낯선 나라로 가다니 대단하지 않아요? 가게를 싸게 주면서 화분을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고요. 꽃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있다면서.  

공작 선인장이 붉게 타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쉰이 넘은 나이에 낯선 삶 속으로 들어간 그녀에게 행운이 있기를! 파리하게 하얗던 그녀의 얼굴이 저 붉은 선인장처럼 피어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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