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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Jul 29. 2021

밥 먹을 용기

코로나 시대에는 밥 먹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얼마 전에 친구 셋이 밥을 먹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코로나 감염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라 피차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밥 먹는데도 용기를 가져야 했을까? 참 희한한 세상을 보내고 있다고 다시 느꼈다.   


 밥이란 무엇일까?

 밥은 그 곁 재료에 따라 쌀밥, 보리밥, 영양밥, 현미밥, 찹쌀밥 등 다양하게 불린다.

 먹는 주체에 따라 맘마, 밥, 진지, 수라가 되고, 장소에 따라서도 많은 이름을 가진다. 농촌에서 모내기 중에 먹으면 못밥이 되고 절에 가서 먹으면 절밥(공양밥)이 된다.


 밥 위에 반찬을 얹어 간편하게 먹기 좋은 오징어덮밥, 불고기덮밥 등 여러 가지의 덮밥과 밥에 다양한 야채를 넣고 비벼먹는 비빔밥, 밥 속에 나물을 넣은 곤드레밥 등 참 종류도 많다.

 국민간식 겸 요기가 되는 김밥도 빠질 수 없다. 톡톡한 김에 고슬고슬한 밥을 얹고 노른자 지단을 깐 다음 깻잎 한 장을 놓는다. 그 위에 다시 흰색 지단을 펴고, 센 불에 재빨리 볶아 붉은색이 살아나는 당근과, 노란 단무지, 간장과 물엿에 조린 우엉, 볶은 쇠고기, 소금에 살짝 절여 새파랗게 볶은 오이 등을 넣고 말아서 얇게 썰면 김밥은 꽃이 된다.


 의미를 달리하는 또 다른 밥이 있다. 이 밥은 아무나 먹을 수 없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처음으로 먹는 ‘첫국밥’이 그것이다. 40여 주간 내 뱃속에 있는 아이는 하나의 우주다. 하나의 우주를 창조한 희열은 출산을 겪은 여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 우주가 분리된 후의 헛헛함을 메워 주는 ‘첫국밥’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하얀 쌀밥과 고소한 참기름이 동동 뜨는 미역국은 세상 어느 밥보다 더 맛있다.


 할 일은 미루면서 이익만 좇을 때는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한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회는 부패한 사회다. 눈앞의 이익이 우선인 사회에서 정의는 길을 잃는다. 나만 있고 너는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가 발밑에 부스러지는 낙엽처럼 짓밟혀선 안 된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는 거창한 철학적 논제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다. 정치 인 등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택하는 ‘단식’은 뭔가를 얻기 위해 죽고 사는 문제를 담보한 것이다. 단식으로 죽었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목숨을 담보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나는 여긴다. 그것이 죽을 만큼 중요한 일일지라도.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을 더 잘 알고 싶으면 ‘언제 밥 한번 먹을까요?’라면서 다가간다(혹은 차나 한잔?). 이 말은 내가 당신한테 관심이 있는데 당신은 어때요?라는 간접 질문이다. 공적인 것 외에 사적인 영역도 함께 하고 생각이 있는지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그 사람이 마음에 없으면 대놓고 거절은 못하고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맨 처음 발화자도 사정을 눈치채고 서로 어색한 미소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반대로 나의 반응에 호응하는 상대라면 된장찌개든 삼겹살이든 먹을 기회를 만들면서 서로를 알아갈 것이다. 이 사람과 계속 관계를 맺어도 좋은가 하는 탐색의 순간인 것이다.

 아, 모든 관계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밥 동무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특히 혼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밥을 먹자고 할 때는 그에게 미안한 일이나 위로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주로 하는 말이다. 때로는 잠시 소원해진 관계를 다시 이어보자는 신호일 수 있다.

 밥 한번 같이 먹었다고 금세 가까워지거나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첫술에 배부르랴고 한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두 사람 사이는 긴밀해지는데 적당히 곰삭아서 깊은 맛을 우려내는 관계를 만들 것인가,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관계가 될 것인가는 당사자들 하기 나름이다.    


 먹어서 편한 밥이 있고 먹기에 불편한 밥도 있다.

 친구들과 수다를 덤으로 얹어 먹는 밥은 삶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직장에서 상사들과 하는 회식은 대개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하다.

 언젠가 팀원들을 데리고 기관장과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어떤 프로젝트를 얻기 위해 약간의 계산이 섞인 밥자리여서 그런지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밥을 그때 먹었다. 그들이 편안하게 씹어 넘기는 밥을 모래알처럼 우걱우걱 씹는 그때의 기분이라니. 결과는 좋았지만 다음에 그런 자리는 당연코 노(NO)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힘 중에는 밥심(힘)이 제일이라 하는데 밥 먹는데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얼른 가고 편하게 밥 한 끼 나눌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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