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이었다.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횟수가 적던
아빠의 전화가 왔다.
어떻게 지내니.. 밥은 잘 챙겨 먹니.. 같은 일상적인 물음으로 말을 꺼냈지만
목적은 역시나 나의 결혼 얘기였다.
늘 하던 대로 관심 없다고 말했지만,
이번엔 아빠도 지지 않고
마을에 목장을 하는 집안의 딸이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아빠는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를 오가며 종종
그 딸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착하고, 알뜰하고, 직장생활 해서 번 돈을 엄마에게 다 갖다 주고..
자기도 곧 서른이 된다고 빨리 시집을 가고 싶은데 부모님은 별 관심이 없다는 것 같다는 둥..
시시콜콜한 얘기를 다 하셨다.
난 의미 없는 웃음으로 대충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것으로 더는 묻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어제 기어이 그 딸의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냈다.
그 딸의 인스타 속에 올려져 있던 셀카를 어떻게 보여달라고 하여 다시 폰카로 찍은듯했다.
그러면서 언제 집에 오면 한번 만나보란다.
다리를 놔준다고..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2
너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을 떠났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나는 배웅하러 나가지 않았다.
너는 기차 안에서 이 사진과 함께
그동안 고마웠다며 잘 지내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앞으로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 때문에 찾아온 너를 단 하루,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11월경..
나는 모든 연락을 끊었다.
너는 몇 번 더 연락했지만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너를 잊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다 그렇듯
시간이 흐를수록 잊힐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너를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너를 잊으려 시작했던 여행의 횟수는 더 많아졌다.
#3
이런 얘기를 가족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몇몇 친한 녀석들에게 꺼내놓은 적은 있으나
가족에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아직도 내가 사랑도 모르고
연애 한 번 하지 않는 답답한 아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제 슬슬 말할 준비를 해야겠다.
죽을 만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나에게 사랑은 그 사람 하나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