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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Sep 23. 2019

아시아의 물개가 되겠습니다.

청쾌한 연못에 발만 담궈도 체증이 내려가는 요즘입니다.

물에 들어가서 참방거리고 있으면 강사가 호각을 물고 몸푸는 체조를 시작한다. 삑삐익-삑삐익- 소리에 맞춰 팔다리를 들었다내렸다 무릎과 허리를 굴렸다폈다한 뒤에 실력에 따라 줄을 서는데 내 차례는 한참 뒤에야 온다. 그렇다. 꼴찌다. 순결한 레벨을 가진 사람은 나와 두 사람이 더 있는데 그 셋 가운데서도 내가 꼴찌다. 둘은 벌써 발차기에 이어 팔을 돌리는데 나는 킥보드에서 팔 하나 떼면 버둥버둥 익사하는 줄 안다. 내 키는 힘껏 반올림하면 169, 수심은 150. 죽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십중팔구 살아나오는 깊이다.


수영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 기회가 아주 많았고 쉽게 배울 수 있었는데도 밀쳐뒀던 이유는 오직 그거였다. 무중력의 공포. 그 유명한 뉴질랜드 번지점프대(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촬영지)에서 점프대까지 올라가놓고 사상최초로 30분 실랑이(실랑이라 쓰고 진상이라 읽는다) 끝에 포기하고 환불받은 용맹하고도 어글리한 겁쟁이가 바로 나였다.  나는 땅으로부터 발이 뜨는 순간 그 무한함을 견딜 수가 없다. 내 몸을 감싸는 무한한 공기, 무한한 중력, 무한한 전방위 속에 나는 자유가 아니라 갇히는 기분이 든다. 번지점프는 로프라는 생명줄을 칭칭 감고라도 있지, 물 속에선 신체의 부력으로 떠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죽을 것 같은데 온 몸으로 느끼는 물의 압력에 저항하며 팔 다리를 연신 저어야 한다. 아아 감당할 수 없어, 수영을 배울 생각만 하면 현기증부터 났었다. 


그런 내가 수영 배울 결심을 한 것은 갑자기 박력있어져서가 아니라 임계치에 달해서다.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자각 그리고 이왕이면 배우는 즐거움도 노려보자는 순순한 계산이 있었다. 몸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아직은(!) 철없는 나이에, 부끄러움마저 즐길 수 있는 여전히(!) 뻔뻔한 성격에, 훗날 나이의 압박에서 벗어나 세월의 무중력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는 데에 결론이 닿았다. 그 순간 무중력의 개념이 공포가 아니라 미지의 신세계로 다가왔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곧잘 배운다. 배우는 걸 즐거워한다. 셀프 디스는 아니지만 진도와 무관하게 즐거워한다. 가르치는 입장에선 속이 터진다. 지가 이해될 때까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이순신의 거북선도 아니고 명량이 코앞인데 왜 나아가질 못하냐고.  접영, 평영, 배영, 자유영 다 떠나고 내 차례다. 킥보드를 앞으로 내밀면서 음, 파, 음, 파 물살을 가르며 돌진한다. 5초도 못돼 150미터 수심에 우뚝 선다. 발바닥으로 수영장의 중력을 한껏 느끼고는 다시 음, 파, 음, 파. 


내 호흡을 봐주겠다고 뒤에 따라 오던 분이 내 곁으로 온다. 저번보다 호흡이 길어졌네, 발차기할 때 발도 뜨고 많이 좋아졌어~ 칭찬요정을 자청한 그분의 선한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나는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와아 정말요?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얼굴에도 그분의 얼굴에도 만족감이 퍼진다. 어차피 다음 레인에서 또 5초만에 우뚝 설텐데도 이런 과정이 너무 재밌다. 


문제는 중력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한 게 즐거워서 그에 따르는 불편부당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수영을 시작하면서 나는 밥보다 잠이 먼저고(먹깨비인 내가!) 툭하면 체하고(호흡을 익히면 괜찮겠지) 딱히 뭘 하지도 않는데 몸무게가 줄어버렸고(노 모어 플리즈ㅠㅠ) 10시만 되면 졸리지만(오 놀라워라) 익히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들이기로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까지 수영을 익히기 위해 내 안의 구태를 깨야한다면 와이 낫. 기꺼이 깰 용의가 있다. 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내 의지, 내 결심, 나의 즐거움. 


아마도, 반드시, 의심의 여지없이 나는 킥보드 없이 내 팔다리로 물살을 가르게 될 것이다. 목표는 바다에서의 배영. 그리고 금빛 모래밭에 굉장히 어여쁜 파라솔과 비치타월을 펴고 책읽다 음악듣다 수영하다를 오토리버스 하는 것. 


그때 안 되던 것이 자금은 된다. 가령 이런 결심. 이런 상상.

 

그리고 안은영, 그때 잘 되던 것이 지금은 안 되는 것에 서글퍼하지 않기로. 

인생의 재미는 아주 간단한 것에 초집중할 수록  멋지다는 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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