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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Oct 11. 2019

가을풍경 하나-뻐근한 사랑노래

풍경 하나.


오후 세시. 나는 가로수가 붉게 물들어가는 시월의 테헤란로를 걷고 있다. 걷는 사람은 많지 않고 차들은 짧게 막힐 뿐 대체로 빠르게 지나간다. 나뭇잎이 흔들리다가 발아래 나붓이 떨어질 적에 때마침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신곡이 흘러나온다. 며칠 전 내 손에 들어온 신보의 타이틀곡이다. 알고 있다. 사랑으로 심장이 터져죽는 일은 어지간해선 일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내 심장은 뭘 잘못 먹었나 싶게 노상 빠르게 뛰었다. 마치 매 순간 사랑의 기적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듯이.

가을날 붉은 잎 하나가 발아래 떨어지는 순간 카디건스의 새 노래가 귓가에 챙챙챙 울리는 기적은 사랑이 과로에 찌든 사회초년생을 구원하는 증거였다. 완벽한 인생, 뜨거운 사랑, 폭주하는 심장. 스물넷은 이 세 가지에 중독되기 알맞은 나이가 아닌가. 나는 걸었고 또 걸을 수 없기도 했다. 시뻘건 아궁이에서 끓다 나온 도가니마냥 자꾸만 무릎 연골에 힘이 빠졌다.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듯 나는 기쁨과 두려움으로 탄식했다. 노래가, 햇살이, 바람이 땀구멍마다 스며들어 내 몸을 붕 띄우는 건 아닐까. 심장이 터지다못해 녹을 수도 있나. 어쩜 이렇게 매일 행복을 갱신하느냔 말이야. 아아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어.  

서울의 모든 가로수 잎들이 내 심장을 파고들어와 종소리처럼 울려퍼지던, 내 사랑은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물성을 가진 채 내 영혼과 물아일체가 되었(다고 믿어의심치않았)던, 적다보니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데 그것이 아련함인지 느끼함인지 알 수 없지만 벅찬 사랑으로 심장이 터져버릴까 긴장하느라 쇄골이 뻑적지근하던- 어느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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