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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r 18. 2019

일생을 일년처럼

생태탐사

지난겨울부터 팀을 짜서 산에 오르고 있다. 생태학습을 위한 탐사다. 다들 고수들인데 나만 까막눈이다. 더듬더듬 쫓아다니는 내가 측은한지 가끔 나무 이름과 특징들을 복기해주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혼자 다닌다. 저마다 각자의 산을 만나러 왔으니 선생님의 설명 외에 간섭도 방해도 하지 않는다. 

안내자와 함께 오르는 산은 새로운 경험이다. 몰랐던 이름들을 불러주고 곧 꽃과 잎을 틔울 겨울눈을 눈여겨본다. 요즘 만나고 있는 나무들은 이미 일년치 살림밑천을 다 장만해놨다. 겨울과 봄 두 계절이 나무의 몸을 지나는 동안 마른 가지에 부지런히 겨울눈을 만든다. 티끌처럼 작은 겨울눈 안에는 잎이 될 녀석, 꽃으로 필 녀석, 훗날 가지로 탈락할 녀석까지 마이크로셀 형태로 들어앉아있다.  


한번 오르고 나서 수일내로 다시 찾기가 나는 쉽지 않았다. 주말은 주말대로 피하게 되고 평일은 시간이 나지 않는다. 몇 번 달력을 살피다가 포기하고 마는데 지난달에 올랐던 화악산은 달력에 구멍이 나도록 동그라미를 여남은 개를 그어뒀다. 꼭 다시 만나야 할 나무가 그곳에 있다. 


녹지 않은 눈을 사락사락 밟으며 비탈을 오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 기다렸다는 듯 펼쳐진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건너편 산자락에 누가 분홍 물감을 뿌려놓은 듯 꽃도 아닌 것이 붉은 비단도 아닌 것이 온 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한 종류의 나무가 밀생하는 자연 군락으로, 이 나무의 회백색 수피가 벗겨지면서 붉은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껍질을 벗는 나무는 많다. 인기가 많은 자작나무의 경우 회백색에서 진회색 속살을 드러낸다면 이 나무는 분홍과 다홍의 중간색이다. 벗겨지는 수피는 너절하게 흩날리지 않고 큼지막하게 떨어진다. 관목으로 키가 크고 수형도 이지러짐 없이 하늘을 떠 받들었다. 이름은 거제수나무다. 한눈에 반해 심장이 뻐근해온다. 


보는 순간 나는 잉걸이 떠올랐다. 불덩어리처럼 홧홧하지 않고 꽃처럼 붉지도 않은 우아한 발색이다. 눈이 시원해지고 편안해서 시간을 통째로 삼켜버릴 듯 웅장하다. 본색이 밝아서 볕이 좋을 때나 어두울 때나 수피가 환하고 잎을 무성하게 낸다. 한창 여름에는 너른 품에 그늘을 만들어 나그네의 낮잠을 허락해준다. 자작나무와 같은 집안인데, 탈 때 자작자작 탄다고 해서 붙은 이름처럼 거제수나무도 껍질에 특수한 기름성분이 있다. 태양에 약한 반음수성이라 껍질을 얇게 만들어 강한 햇살에 쉬이 껍질을 벗겨낸다. 헐벗은 차림이지만 괜찮다. 내년에 또 만들면 되니까. 


지나간 수백 년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매달아 씨앗으로 떨구고 눈 내린 땅에 언 발을 묻어왔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흐르고 새와 곤충과 뱀과 노루가 노상 함께였다. 가만히 바라보는 이 순간에도 나무는 이글이글 타는 빛으로 제 껍질을 벗어낸다. 


화악산의 눈이 녹으려면 아직 멀었단다. 때는 겨울, 모두가 갈색으로 몸을 옹송그린 깊은 숲. 지난해의 흔적을 낱낱이 떨구고 새날을 위해 붉은 살을 태우는 그런 나무가 있다. 

<화악산은 수도권의 동북쪽 끝자락에 있다. 이 산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강원도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에 있다. 소재는 경기권이지만 중부 이북과 강원지역의 식생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1월과 2월에 올랐던 검단산, 화야산, 축령산 등에 비하면 특징이 도드라진다. 듣거나 보지 못했던 초본과 목본의 퍼레이드다. 차를 이용할 경우 굽이굽이 산모롱이를 돌아 공용화장실 앞에 주차하고, 울울창창한 산에 들어서면 된다. 해발 900고지로 산마루쯤 올라가면 핸드폰이 터지지 않으니 통화 용무는 미리 조처해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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