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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Apr 22. 2019

나는 하류인간

국립수목원의 솔송.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고아한 열매를 달고 있다. 


순전히 자유의지로 광릉 국립수목원 실습에 나섰다. 닷새 동안 오감 열고 두 다리로 재게 걷고 까먹기 전에 적고 외워야 한다. 숲 공부를 위해서다. 한 몫을 해내기까지 창창히 펼쳐진 과정이 까마득하지만 지난해부터 일단은 하는-ing 마음. 

어디든 프로의 세계는 그렇겠지만 이 방면은 특히 고수가 넘쳐난다. 느티나무 아래에 서서 근방에 자라고 있는 풀과 곤충, 나무를 간단히 말씀드리겠다며 수백 종을 읊는다. 나로 말하자면 ‘너 대체 아는 게 뭐냐’는 시선에 굴하지 않는, 담대한 까막눈이다. 

그런 마당에 궁금한 건 되게 많아서 이른 아침 실습이 시작되기 전 드넓은 수목원을 애호랑나비마냥 팔랑팔랑 쫓아다녔다. 그런데도 절반 이상을 못 가본 채 실습이 끝났다. 짙게 남은 단상은 또 있다. 실습자 중 한분과의 4박5일에서 확인한 ‘나’라는 하류인간이다.


그 분은 나보다 예닐곱살 위의 여성으로, 쉬는 시간엔 왁자지껄하게 돌아다니고 수업시간엔 추임새를 넣거나 혼잣말을 해서 수업시간마다 스타급 주목을 받았다.  감 잡을 수 없이 질박한 사투리(친정, 시댁, 직장이 뒤섞여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찰떡 믹스)를 구사해 같은 말을 해도 데시벨과 파워가 세 배쯤 크게 전달되는 메가 스피커이기도 했다. 


도심보다 4~5도 낮은 기온 때문에 수목원에는 이제사 봄이 피어나고 있었다. 보고 기록해야 할 꽃과 나무 뿐 아니라 아직 봄맞이를 못한 겨울눈과 몸을 틀기 시작한 애벌레까지 눈으로 익혀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뭔가에 매진해본 게 얼마만이랴. 신이 나기도 했다. 봄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현장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바빴다.  


그분과 나는 5일 내내 한 조로 움직이게 됐다. 스로 으지하입시데잉~ 내 팔짱을 꼬옥 끼면서 그분이 말했다. 저는 의지할 줄 모르는 독립적 인간입니다만, 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소음과 큰 소리에 취약한 달팽이관도, 초록을 보며 차분히 실습하고 싶은 작은 바람도 나는 스스로 지켜내지 못했다. 

그 분은 항상 뭔가를 찾았다. 볼펜, 물티슈, 커피 믹스, 수첩 심지어 종이컵까지 작은 배낭을 매번 탈탈 털었다. 신기하게도 찾는 물건을 제외한 모든 물건이 나왔고 다음 날이면 감쪽같이 들어 있었다(잇츠 매직!). 나를 가장 질리게 했던 것은 ‘있잖아’와 ‘저기요’였다. 괄괄한 목소리로 쉴새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내 대응이 성이 차지 않으면 내 팔을 잡아채거나 툭툭 치면서 질문에 집중해줄 것을 강요했다. 해설가가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도중에도 말을 끊고 맥락없는 질문을 해대서 여러 차례 주의를 받았다. 질문은 사소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할 수 있는 한 공손하게 물었을 것이다. 다만 옆에서 보기에 무례했다.


같이 들은 얘기를 내게 묻고, 그걸 확인하느라 관계자에게 무턱대고 질문하기를 반복하자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틀이 넘어갈 즈음 그 분은 내게 함께 실습하는 동기에서 귀찮은 존재가 돼있었다.  

사흘 째, 실습과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 날의 테스트를 위해 문서를 제출해야 했다. 고작 두어 장이었지만 각자 자신만의 언어로 작성해야 했기에 모두의 신경이 가장 곤두선 날이기도 했다. 있잖아, 그 분은 유에스비 하나를 내게 내밀면서 배시시 웃었다. 영문을 모르고 바라보다가 뜻을 알아챘다. 낮은 이해력과 반 반자 느린 해석력으로 본인 역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가장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대리 작성을 요청하는 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난이도를 떠나서 이곳에서 실습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속으론 아연했지만 아무 말 없이 유에스비를 건네받았다. 


평소의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가장 나다운 위선이기도 했다. 움치고 뛸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제한구역에서 상대방의 약한 고리가 드러나면 본능적으로 그 약한 고리를 건드리고 싶어진다. 성가신 상대라면 상처를 내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나는 내 작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그분의 작업을 대신 해주었다. 최대한 알기 쉽도록 설명까지 따로 넣었다. 몇 번 훑어본 뒤 테스트에 임하면 무리 없이 통과할 만큼 포인트에 집중해서 적어나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분의 천연덕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 분을 돕는 척 하면서 한껏 무시하고 있었다. 무시는 점점 은밀하고 폭발력있게 증폭됐다. 이곳을 나가는 순간 이 마음은 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질 것이다. 나는 그분을 내멋대로 판단하고 분류했다. 내가 평소에 사방팔방 조심하라며 떠들어대던 바로 그 하류인간의 행태다. 나는 둔하고 성가신 혹에게 시혜를 베풀 듯 발톱을 감추던, 수목원에서의 위선을 이따금 기억해낼 것이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걸 떠올릴 때마다 괴로울 줄 알면서도 조롱을 멈출 수 없는 오늘 나의 저열함. 


애초에 혼자 해나갈 자신이 없던 그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란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거였다. 


그분은 마지막 날 나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만큼 했으면 됐지 설마 내쫓겠어? 라고 말하고 책상에 발라당 엎드렸다. 나를 대하는 방식도 표변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어찌어찌 얻고 난 다음이어선지 투박하면서도 조심스럽던 지금까지의 태도는 사라지고 막냇동생 대하듯 스스럼없었다. 이것이 그분의 최선임을 나는 안다. 


너구리와 삵은 같은 영역에서 먹이활동을 하는데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대개 삵이 알아서 피해가거나 일방적으로 당하기 일쑤다. 언뜻 힘이 센 너구리가 숲을 장악하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너구리가 노렸다가 놓친 먹잇감을 기어이 잡아먹는 근성이 삵에게는 있다. 교만한 너구리가 암만 삵의 쩨쩨한 사냥을 비웃어도 삵은 한 번도 주린 배로 돌아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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