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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y 10. 2019

막바지 봄맛-두릅전

어제 주말농장에 갔다가 배추벌레 때문에 폭망 위기였던 열무에서 새 잎이 나는 것을 확인했다. 농장아저씨 말로는 놈들은 어린잎만 공략하기 때문에 이 정도 컸으니 탈 없이 자랄 거란다. 고맙고 반가워서 세심하게 잡초를 고르고 물도 듬뿍 주었다. 

처음엔 싹이 올라오자마자 무참하게 갉아 먹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분할 정도였다. 천연해충제를 뿌려볼까 하다가 저희들의 사정이니 개입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일주일 째. 

벌레 구멍이 훈장처럼 빛나던 나의 열무들아, 언니 무척 감동했다! 이래놓고 뭉텅 뽑아서 내 입에 냠냠 넣겠지만, 이 또한 자연의 순환 아니겠니. 쿨럭. 

지난주 식구들이 모인 참에 두릅전을 해먹었다. 막바지 봄맛이다. 재야의 산나물 애호가인 언니가 직접 따온 두릅으로 우리밀 옷만 입혀 구워냈는데, 전날 담가둔 마늘대 장아찌와 이렇게 잘 어울릴 일?!

겨우내 새순을 밀어올린 두릅의 다부진 맛- 

딱 한 철 땅 위로 올라오는 마늘대의 여리한 맛- 

지금 아니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해. 

언니에게 얻은 팁을 메모했다가 집에 와서 생애 첫 열무김치를 담갔다. 나름 과정을 착실히 따른 것 같은데, 열무 숨죽이는 과정을 귓등으로 들었나봐. 씹을 때마다 열무가 소태다. 양념 비율을 언니 말따나 ‘알아서’ 했는데 김칫국물 만큼은 생각보다 근사하다. 초여름이 시작될 즈음 오이 채 썰어 국수 말아먹어야지. 소태 열무 응급조치로 무를 썰어 박아뒀다. 부디 삼투압에 성공해주라. 열무가 짜믄 못 쓰니께... ㅜ

코스트코에서 사온 계란 두 판이 아직 한참 남았길래 계란장을 했다. 재료 준비할 때 5분만 투자하면 맛이 달라진다던 엄마 말씀이 떠올라 주섬주섬 챙겼다. 대파는 칼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투둑, 멸치는 미리 볶아 비린내를 휘휘, 마늘 물러지는 거 신경쓰지 말고 듬뿍, 못생긴 내 엄지손톱만한 생강 한 알, 지저분한 고추씨 걱정되니 청양고추는 통째로 퐁당, 쓴 맛 잡아주는 물엿 쪼록- 넣고 끓였다. 냄비에 열이 닿기가 무섭게 회가 진동하는 맛있는 김이 모락모락. 그렇구나. 엄마말씀은 참으로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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