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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y 27. 2019

서성이다가 하루가 간다

향초를 켜고 쌀을 씻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돌아왔다. 

차를 우리고 어느 시집을 읽다가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졸았다. 

해충관리업체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십분만에 잠에서 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짐짓 우아하게 관리날짜를 잡았다. 


집안에 좋아하는 향이 떠다니고 쌀과 콩은 알맞게 불려지고 있는데 

식었어도 차는 맛있고 시들은 매듭도 호흡도 없이 너무 빨리 읽혔다.

묵음인 채로 명멸하는 단체카톡의 메시지들과 집주변을 에워싸는 빗소리가 요란했다. 


공기가 낮게 깔리는 날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거기 당신은 뭐하고 있는지, 

아침의 다짐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저물녁의 태양에게 배반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심을 감춘 웃음이 할할할 땅바닥에 뒹구는 오늘같은 날 

당신을 이고 걸어가는 그림자는 이 저녁에 안녕한지


오늘은 서성이다 하루가 간다. 

생각의 갈피를 잡으려다가, 

당신의 안부를 궁금해다하다가, 

풀리지 않는 첫 문장을 헤집다가, 

반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해저무는 서쪽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비가 그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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