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댁 Nov 04. 2022

미안해하지 마

윤이랑, 일상 속 작은 발견 여행 71

11월 1일, 신랑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같은 날 오후 지윤이도 열이 난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가족 모두가 코로나를 앓고 지나가겠구나 싶었는데 지윤이는 목에 염증이 생겨 열이 난 거고, 코로나는 아니었다. 나도 1일부터 매일 자기 진단 키트를 하고 있는데 나흘째 음성이다.


신랑은 작은방에서 지내고 있다. 화장실이 하나라서 사용할 때마다 청소하고, 소독한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지윤이는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2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 몇 번 나눈 게 전부다. 지윤이에게 작은 방 열쇠를 잃어버려서 문을 열 수 없다고 했다. 신랑은 작은 방에 숨어 사는 야수가 되어 가끔 콜록콜록 기침을 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 아픈 몸으로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독박 육아를 하게 되었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낸다. 신랑이 얼른 낫기를, 지윤이와 내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방에서 지윤이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신랑은 옆에 있는데도 만나지 못한다며 속상해했다. 때로는 지윤이가 떼를 쓰며 울고, 나는 일부로 관심을 주지 않고 기다린다. 바깥의 상황을 모르는 채로 아이의 울음이 길어지면 마음이 어떨까... 신랑은 코로나에 걸린 후 계속 나에게 미안해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일하고, 지윤이 돌보느라 신랑을 잘 챙겨주지 못한다. 어제도 지윤이를 재우면서 같이 기절하듯 잠들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도 미안한 마음이다.


출근길에 신랑한테서 전화가 왔다.

- "지영아, 미안해."

목이 잠겨있고, 콧물을 훌쩍거렸다. 우는 것 같았지만 코로나 증상 때문이라며 애써 모른척하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오빠, 울어?"


사실 나도 지윤이를 차에 태우고 출발하면서 눈물이 조금 나왔다. 신랑은 코로나로 작은방에서 격리 중이지만 지윤이는 작은 방에 아빠가 있다는 걸 모른다. 그래서 인사도 못하고 나왔는데, 복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신랑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있는데도 마주하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픈데 챙겨줄 여력이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게 미안했다. 신랑은 자기가 코로나에 걸려서 나 혼자 일과 육아를 감당하는 모습에 많이 미안해했다.


일상을 함께하던 신랑이 한 걸음 물러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나와 지윤이를 지켜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자신은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내가 하루하루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힘들지만 지혜롭게 해결하며 지내왔다는 걸 느낀다며, 그동안 그 마음 더 많이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기는~ 조금 고생스럽지만 이 시간을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아껴주는 우리가 되기를, 건강하게 지내는 일상에 더 바랄 것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기를 바란다.


신랑이 코로나 걸리기 전에 숨 가쁜 일상에 지치고 힘들다며 투정한 적이 있다. 며칠 전에 쓴 글인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돌아보니 평범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

아침에 일어나 얼굴 마주 보며 "잘 잤어?" 인사 나누고

저녁에는 식탁에 둘러앉아 따듯한 밥을 먹고

개운하게 씻고 푹신한 이불 위에 퐁당 누워 뒹굴며 놀다

자기 전에 고생했다, 애썼다 토닥여주며 얼굴 비벼주는 것.


저 무지개 너머의 꿈이 아닌 지금 우리가 가진 이 행복을

언젠가는 "그때 참 행복했지" 뒤돌아보며 추억할 날이 있을 것 같아.

지치고 힘들다고 투덜대지 말고 고맙고 고맙다며 따듯하게 말해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전부라 여기며 꼭 끌어안고, 감싸 안을 수 있기를.

---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21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