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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Aug 23. 2024

한밤중의 과일 파티

5시 55분에 출근하는 신랑.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더니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양손에 들고 출근한다. 말하지 않아도 늘 최선을 다해 가정을 살피는 모습이 참 고맙다.


며칠 전 아이들이 잠든 후 신랑과 포도 한 송이 씻어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 밤이 있었다. 알알이 포도알처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재미있었다. 이야기 끝에 신랑이 말했다.


- 아침에 지윤이 등원하고 들어왔을 때, 아기 안고 있는데 예쁘더라!


- 아침에? 나 그때 청소하고  땀에 절어있었는데~


신랑이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는 기회를 틈타 아침에 청소를 끝내고 싶어서 속도를 냈었고, 땀이 난 채로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더군다나 씻기 전이라 엉망이었을 텐데 예뻐 보였다니! 그러니 나랑 결혼했지…


어쨌거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져 최근에 설렌 순간을 고백했다.


- 며칠 전에 칼질하고 있는데 오빠가 가까이 온 거야! 요리사 앞에서 어설프게 칼질하려니 어쩐지 좀 민망했는데 오빠가 다치지 않으려면 칼을 이렇게 잡으면 돼~ 하고 부드럽게 알려주니까 좀 설렜어. 몇 년 만에 설렌 건지 모르겠네.


몇 년 만에 설렌 건지 모르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그만큼 익숙한 나에게 조심스럽게 알려주는 신랑의 모습이 고마웠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 누구보다 나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이제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안쓰러운,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같이 살고 있다.


아이 둘 낳고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는데 한밤중의 포도 파티는 꽤 만족스러웠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잠든 후, 종종 둘만의 과일 파티를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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