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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Apr 22. 2018

4월, 봄날, 경주, 그리고 꽃추억

경주 보문단지로 벚꽃 나들이 다녀와서

# 세상에, 예쁜 것!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 따스한 햇살을 통해 느껴지는 봄은 포근한 엄마의 품 같다.


연둣빛 잎보다 먼저 찾아오는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가 시선을 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다리던 벚꽃은 팝, 팝, 튀어오르 듯 피어나 출퇴근길 새봄이 찾아왔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퇴근길에는 벚꽃 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들고 한바퀴 빙그르르 돌면 아득한 봄밤에 취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꽃샘추위와 봄비로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유난히 아쉬웠던 스물아홉번째 봄이었다.



# 경주 보문단지


경주는 벚꽃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벚꽃이 만개한 시기를 살짝 지나 반쯤은 떨어지고, 반쯤은 남아있는 시점에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경주 보문단지를 찾았다. 서울에서는 벚꽃축제 기간이지만 눈발이 내리던 주말,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벚꽃길을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걷다보니 해마다 봄이면 사람들이 왜 굳이 경주를 찾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등 수학 여행지 코스가 아니어도 두 발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소담한 풍경이 마음을 빼앗는 시간이었다.



특히 농협경주교육원 가까운 곳에 선녀탕인가 싶은 벚꽃명소가 있었다. 선녀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많은 사진사들이 꽃비 내리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같은 날 보문단지를 방문한 선배는 이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벚꽃이 많이 떨어져 크게 감흥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사진을 보고 놓친 풍경을 아쉬워하셨다.



# 슈만과 클라라 카페


뚜벅이 여행을 하다 또 한번 우연히 발견한 곳이 있으니, 우양 미술관 안에 위치한 슈만과 클라라 카페였다. ‘주인장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나?’라는 호기심에 가보았는데,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나무로 된 인테리어와 벽면에 크게 걸린 그림들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메뉴판과 그림이 색색깔의 분필로 그려져있어 눈길이 갔다. 자세히보니 초크아트였다. 요즘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어서 손으로 직접 그려 세상에 둘도 없는 이런 작품들에 마음이 더 가는 것 같다.



뭐니뭐니 해도 카페의 기본은 커피맛일텐데,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주인장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는데 최근에 테라로사에서 마신 핸드드립 커피는 부드럽고 맛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테라로사 커피 만드는 법을 교육하셨다고 하셨다.



일본식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았는데, 커피와 스콘을 차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이런 커피는 어떻게 내리는걸까? 대중적인 커피 맛이 이랬다면 커피 애호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안압지


낮에도 예쁘지만 밤에 조명을 밝히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예전에 왔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에 기찻길이 나있는데 네칸 정도 되는 짧고, 느린 기차 지나가는 풍경이 운치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온 커플들이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고, 타이머를 맞추고 둘의 모습을 함께 담는 풍경이 정겹고, 따뜻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 부강식당의 황태 해장국


보문단지와 안압지, 월성, 그리고 황리단길까지 걸어서 다니려니 두 다리도 아프고, 지쳐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로 걸어가는 길목에서 파란 간판이 눈에 띄어 부강식당에 들어갔다. 단품메뉴를 주문하면 짧은 시간 안에 먹고,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숨어있는 맛집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식탁 가득 차려주신 다양한 반찬은 집밥 못지 않다. 주인공 황태 해장국도 담백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에 한그릇을 맛있게 다 먹었다.

여행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큰 기쁨이라 생각하는데, 저녁 메뉴가 성공적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 무한히 반복되는 축복


집 앞에 자란 벚꽃나무도 참 예쁘다. 그러나 경주에서 벚꽃이 온전히 집중해서 사진을 찍고, 감탄하고, 기뻐한 시간이 짧은 시간 잠시 왔다가 떨어지는 꽃잎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제 벚꽃이 지고 연둣빛으로 차오르는 나뭇가지는 또 어찌나 산뜻하고 싱그러운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누군가는 묻는다. 매년 피고 지는 벚꽃인데 왜 굳이 구경을 가느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는 매년 같은 풍경을 처음인냥 반기고, 눈에 담고, 아쉬워하며, 추억하는 것 같다.

벚꽃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들도 피고 지는 꽃처럼 반복되며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매번 새롭게 받아들인다는 건 어쩌면 축복 아닐까?

4월의 봄날, 또 다른 꽃추억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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