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할 실력(수정)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을 읽고 다시 써보기

by 이수댁

[좋은 문장,나쁜 문장]을 읽고 자신이 그동안 썼던 꿈만필 미션 글 중 고쳐볼 글들을 A4지 2장 분량 정도 모아서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의 가이드를 참고해서 고쳐본후 before, after를 올려 봅니다.


일년 전 좋아하는 책방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 이대욱 선생님과 바이올리니스트이경선 선생님, 첼리스트 김민지 선생님의 공연을 보았다. (일년 전 책방 콘서트에서 이대욱 피아니스트, 이경선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지 첼리스트의 공연을 봤다.) →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반복되었다.


최인아 책방에서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진행하는 콘서트에 회사일 등 피치 못할사정이 있지 않은 한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혈 팬이자 단골 손님 중 한 사람으로 행복해하던 소중한 나날이었다.(송영민 피아니스트가 진행하는 최인아책방 콘서트에 회사 업무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빠짐없이 참석하는열혈 팬이자 단골손님이었다.) → 한 문장이 너무 길다. 간단하게 만들자. 열혈 팬이자 단골손님이라는 표현에 소중히 여기는 시간이라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 가능하다.


2018년 상반기에는 3월부터 6월까지 격주로 8회의콘서트를 진행했는데, 한회 한회 참석할 때마다 그 시간을 좋아하는 마음과 콘서트의 끝이 점점 다가옴에대한 아쉬운 마음이 정비례로 커지곤 했었다. (2018년 3월부터 6월까지 격주로 8회의 콘서트가 있었다. 한 회 한 회 참석하면서 콘서트를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콘서트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아쉬운 마음이 정비례로커지곤 했다.) → 한 문장이 너무 길어서 두 문장으로 나눴다. 단위를 나타내는명사는 띄어쓴다.

갑자기 작년 5월의 콘서트를 떠올리는 이유는 이대욱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일년이 지난 오늘 불현듯 떠올라 글쓰기에 대한자세를 다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책방콘서트를 떠올리는 이유는 일년 전 이대욱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지금 나의 글쓰기 자세를 다잡아주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이대욱 선생님께서는 10세때 서울시향과 데뷔무대를 가진 후 한 평생을 지휘자 겸 피아노 치는 사람으로 살아오셨다.


음악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에 소모하는데, 표현할 수 있는 도구(악기)를유지하는게 연습이라고 느끼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한 평생 갈고 닦은실력으로 들려주신 연주는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 감동의 크기도 두배였다. (음악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에 소모하는데, 연습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도구(악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한 평생 갈고 닦은 실력으로 들려주신연주는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 감동의 크기도 두배였다.)


특히나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는 바이올린 연주도 쉽지않지만 피아노 반주도 쉴새 없이 흐르는 고난이도 작품이다.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피아니스트에게 이 곡을 함께 연주하자고 요청할 때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라고 하는데, 이대욱 선생님께서는 이번 콘서트에서 이 곡을 연주하자고 먼저제안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피아니스트에게 이 곡을 함께 연주하자고 요청할 때 약간 미안한마음이 들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대욱 선생님께서는 이번 콘서트에서 이 곡을 연주하자고 먼저 제안하셨단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선생님께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곡을 소화해내는실력파 연주자로 그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책방 콘서트에서 만난 수많은 연주 모두 훌륭했지만, 두 분의 연주는 비전문가인 나의 귀에도 구름 위 하늘 어딘가 한단계(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주가 끝나고 앵콜곡으로 어버이의 날을 기념하여 ‘어머님 은혜’ 노래가 울려퍼졌다.(울려 퍼졌다.) 관중석에는 실제 이대욱 선생님의 어머니께서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께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어머니께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얼마나 기쁘고, 감동적이셨을까?이대욱 선생님께서는 어머니가 계셔서 연주하실 때 더 떨리셨겠지?(이대욱 선생님께서는 연주하실 때 더 떨리셨겠지?)’ 생각하며 연주 후 선생님께 직접 소감을 여쭤보았다. “아무래도더 신경이 쓰였죠.”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콘서트에 같이 간 친구를 기다리는 사이, 이대욱 선생님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삼촌 등(어머니와 삼촌 등) 친척 분들로 보이는 분들께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그 말이 맞아. 취미로 공을 치는 것도 10년, 20년은 쳐야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죽을 때까지 해야 (무언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지.(드는 거지.)”


말씀 하시는 중에 바로 뒤에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니(미소 지으니) “죽을 때까지!”하고 한번 더 강조하셨다.


지금쯤 되니 어떻게 피아노를 연주해야하는지 알 것 같은데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피아니스트 이대욱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쯤 되니 어떻게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할지알 것 같은데,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피아니스트 이대욱 선생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희를 넘기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클래식계의 큰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라 울림이 더 컸던 것 같다.

죽을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할 실력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할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고느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며 걸어가고 싶은 길. 일단 내 자신이 먼저 즐겁고, 행복한 일.


나는 그게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2018년 3월, 이십대의 끝자락에 후회 보다보람이 더 컸으면 하는 마음에 책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 8기 과정을 신청하게 되었다.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그리고쓸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켜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일년이 지난 2019년 5월, 서른살에(서른 살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 출판을 앞두고있다. (그럴 수 있기를... 희망사항이다.)

“인지도가 있는 사람도 아닌데 제가 쓰는 책에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요? 그리고 아직 일한지 10년도 안되었는데 더 오래 일하신 선배님들이 보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이 될까봐 걱정이예요.”라며 고민하던 나에게 회사 선배님께서 따뜻하게 격려해주셨다.


“시간이 지난다고 누구나 저절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리고지금의 너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지만 나중엔 네가 쓴 글이 세상에 너를 알려줄거다. (알릴거야.) 그러니 그런건 (그런 건) 걱정하지마.”


그 말에 힘을 얻어 주제를 잡아 주 1회공유하던 칼럼이 차곡차곡 쌓여서 책을 구성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돌이켜보니 책을 낸 것보다(낸다는 결과 보다) 더 중요한 건 일하는 분야 관련하여 매주 글을 쓰기 위해 (매주 일하는 분야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통해 경험하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나누며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하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소통하고있다는 것이다.)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한발 한발 (한 발 한 발 또는 한 걸음씩)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한 나날이다.

그리고 가끔씩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2018년 5월의책방 콘서트를 떠올려보곤 한다.


‘하루하루 내 실력이 늘고 있구나. 음악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 참 감사하고 기쁘다.’며행복해하던 음악인들의 모습을.


60년 넘게 피아노를 치신 분의 겸손한자세가 이제 막 글쓰는 (글 쓰는) 법을 더듬더듬 터득해가는 30세의 나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전해준다.

백세시대에 ‘여전히 젊은’ 6-70대가 되었을 때 올바른 글의 힘으로 세상에 조금이나마기여하는 내가 되자고. 그때까지 꾸준하고, 성실하게 글쓰기를연습하자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을 건져 올려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가닿을 수 있는 글을 쓰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덧. 지난주에는‘작가의 삶이 들어와 있는 3년 후 나의 모습’을, 이번주엔(이번주에는) 같은 주제로 1년 후 나의 모습에 대한 글을 썼다.

3년 후면 일을 시작한지 10년 차인 중견사원이기도 하고,(중견사원이 되고) 조금은 먼 미래인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변화를 도모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하며 썼다.

하지만 1년 후를 적어내려가는(적어 내려가는) 마음은 좀 달랐다. 1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는 멀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서른살이(서른 살이) 된 내 모습은 어떨까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무엇이 되었고, 무엇을 하고 있고 등 ‘무엇’에 집중해서 생각했는데 결국은 글을쓰는 나의 자세에 대해 쓰게 되었다.

‘무엇’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생각해보면 지금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이 일년 후 눈 앞에 펼쳐질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태도는 본질적인 것으로 급변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1년 후를 상상하며 적어보았다.

실제로 1년 후 내 모습이 어떨지, 어떤 생각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최소한 이 글을 보면서 초심을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떠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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