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민 피아니스트와 함께하는 최인아 책방 콘서트 7-5
어쩐지 제목부터 읽고 싶어 지는 책과 차분한 음악, 그리고 집에 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사온 맥주 한 캔. 아, 그리고 안주로 사 온 마이구미 젤리까지! 담백하고, 느슨한 금요일 밤이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니 할 일이 참 많다. 크고 작은 선택들의 연속! 지금껏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와 함께 고민할 것들이 많다. 그만큼 내 삶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주는 음악, 글쓰기, 독서를 즐길 물리적, 심적 여유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참 중요한 것 같다. 출근 준비하면서 오디오북을 듣고, 짧은 시간이나마 지하철 안에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시기를 기록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회사 앙상블 동호회 사람들과 책방 콘서트를 함께 찾았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선생님의 공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동호회원들의 기대가 컸다. 다행히 일찍 업무를 마치고 공연 한 시간 전에 책방에 도착해서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피아니스트 신수정의 밤'이라고 표현했지만 바리톤 박흥우, 바이올리니스트 신희선, 피아니스트 정선기, 그리고 베일에 가려졌던 영 피아니스트 김세현 군까지 훌륭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어 황홀했다.
음악에는 연주자의 삶과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하신 신수정 선생님은 삶 자체가 클래식 음악의 역사인 사람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책방 콘서트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해주셨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스러질 것처럼 오래된 악보였다. 여든을 앞두고 계시는데, 어렸을 적 동생과 나눠 본 악보라고 하시니 6~70여 년 된 악보인 것이다.
악보와 함께 책을 3권이나 준비해주셨다. 어린 왕자, 개선문,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 책을 읽을 당시의 경험과 감정, 느낀 점들을 생생하게 전해주신 후 이어서 연주를 들려주셨다. 책 한 소절에도 큰 감동을 받으며 오래도록 기억하시고, 어떤 곡들을 연주하지 않으면 봄이 지나가지 않은 것 같다고 소개하셨다. 우리 엄마께서도 개구리 소리를 듣지 않으면 봄이 지나가는 것 같지 않다는 등 감수성 풍부한 소녀 같은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책과 음악, 자연 속에서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삶을 음미하며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멋지게 나이들 수 있기를...'하고 바라게 되는 한 분의 멋진 롤모델을 만난 것 같아 기뻤다.
신수정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영 피아니스트 김세현 군의 무대도 기억에 남는다. 6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지금은 11살인데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마치고 콘서트장에 왔다고 했다. 정장을 차려입고 수줍게 등장했는데 쭈뼛거리며 인사하는 모습마저도 귀여운 꼬마 피아니스트였다. 지난 4월 '제1회 영 차이콥스키 국제 온라인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연주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어색해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음악에 집중해서 연주하는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표현이 가능할까 싶었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진심을 담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답변하는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홀딱 반했다.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는데 그때는 다시 11살 꼬마로 돌아가 쭈뼛쭈뼛했지만 나에게는 너무 매력적인 표정과 미소였다. 지금도 주목받는 꿈나무지만, 앞으로 더욱 멋진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기를 마음을 담아 응원한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봄을 느끼게 해 준 슈베르트 '봄의 신앙'과 '봄의 꿈'(with 바리톤 박흥우),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5번 1악장 '봄'(with 바이올리니스트 신희선) 그리고 드라마 '밀회'를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진 슈베르트 '네 손을 위한 환상곡'(with 피아니스트 정선기) 등 멋지게 연주해주신 연주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추천받은 김병익 산문선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p16. '비슷비슷한 일상, 메마른 정서, 음험한 도시, 꼭 막힌 행동의 반경 - 내 나이쯤의 찌든 현대인이면 으레 부지불식간에 빠져드는 이 함정 속에서 나는 나와 서로 '길들인' 친구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달리 '음악 소리'처럼 들려오는 발소리를 갖고 있음에 어찌 싱싱한 위안을 얻지 않을 수 있겠는가.'
p.s. 언제나 싱싱한 위안이 되어주는 친구 같은 '음악 소리'와 늘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책방 콘서트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