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사람 잡네!

부모님 가게 이사하던 날_190602

by 이수댁

방 정리를 하면서 매일 챙겨 먹은 홍삼 액 병수를 세어봤다.
“하나, 둘, 셋, 넷.... 스물둘!!”
달력을 보았다. 어느새 6월이다. 우연히 맞아떨어진 숫자 ‘22’. 그렇다. 22일 후면 나는 낙성대를 떠난다. 저 홍삼 액을 다 마시면 이사를 간다.
이른 아침부터 상자에 짐을 정리하고 조금 비워진 공간으로 바람이 드는 걸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전에 부모님 가게 이사라는 더 큰 산이 있었다. ‘미니 백화점’은 우리가 대전으로 이사했을 때 시작한 가게인데, 이름에 맞게 작은 공간이지만 없는 물건이 없다. 그만큼 짐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침 8시에 이삿짐을 싸서 용달차에 싣기 시작했는데, 모든 정리를 마치니 밤 열 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십 년 전쯤 가게 이사를 할 때 언니와 내가 모두 해외에 나가 있는 바람에 엄마 혼자 이사를 준비하셨다. 그때 엄마께서는 주무시다가 벌떡 일어나 잠결에 물건 정리해야 한다고 돌아다니실 정도로 힘드셨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사촌 언니와 형부, 심지어 사촌 조카까지 이사를 도왔다. 사공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확실히 일손이 많으니 정리 속도가 빨랐다. 세시를 조금 넘겼을 때 짐을 어느 정도 다 풀었다. 이제 어디에, 어떻게 진열할지 고민하며 정리할 차례였다.

다섯 시가 지났을 때 삼 남매는 지쳐 집으로 돌아왔다. 손흥민 선수가 출전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느라 한 시간 자고 힘쓰던 동생은 저녁도 못 먹고 쓰러져 잠들었다. 생존을 위해 음식보다 잠이 더 필요했나 보다. 거실 바닥에 그대로 뻗어 잠들었길래 이불과 베개를 갖다 주었다.

나는 씻고, 서울로 올라가려던 계획이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올라가는 기차표로 변경했다. 거울을 보니 언니와 나 모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라면을 삶아서 먹고, 각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한 뒤 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방전 상태였는데, 할머니께서 가신다고 가게로 짐을 갖다 달라고 하셨다. 쉬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으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고 가게로 갔다. 그랬는데 추가로 짐이 더 있어서 두 번 왔다 갔다 했다. 어지간해서는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데 어제는 진짜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죽진 않겠지...

가게에 도착하니 친척들과 엄마 친구분들도 모두 돌아가고 부모님만 남아 계셨다. 막바지 정리 작업이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자.”라고 여러 번 말씀드려도 엄마는 정리를 다해야 마음이 편하실 것 같은 눈치였다. 그래서 다시 자리 깔고 정리를 돕다 보니 시간은 밤 열 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하루가 정말 순삭이었다. 가게를 둘러보니 정말 많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루 동안 정말 큰일을 했구나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계신 엄마의 발을 꾹꾹 주물러 드리고 싶었지만 나도 힘이 없었다. 아침에 일찍 기차를 타고 출근해야 하니 내일을 위해 자기로 했다. 그리고 깜. 박! 눈을 감았다 떠보니 새벽 5시였다. 두들겨 맞은 듯이 몸이 무거워서 천천히 출근 준비를 했다. 가족들 모두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이사를 마치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뿐하다. 특히 엄마께서 가게를 보시면서 늘 외부 화장실을 사용하셨는데, 이제 가게 안에 깨끗한 화장실이 생겼다. 그 점이 가장 기쁘다. 새로운 곳에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흥해라~ 미니백화점~~~!

부모님 가게 이사 끝~ 나의 이사 준비 시작!
내 이사까지 마치고 나면 마음이 진짜 홀가분할 것 같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편인데 계속해서 버리고, 비우면서 시시한 이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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