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휴가. 오랜만의 여유
새벽 4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 이불을 돌돌 말고 잠들었던 나는 애벌레처럼 꾸물꾸물 눈을 떴다.
투둑
투두둑.
빗소리에 온 감각이 쏠렸다.
비 온다. 비가 내린다.
샌드위치 휴일이라 기껏 휴가를 냈는데 비가 오다니 아까운 마음도 들 법 한데 기뻤다. 비가 오니까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쉴 수 있겠다 싶었다. 종일 꾸물꾸물 빈둥대더라도 아깝지 않은 날씨니 이 얼마나 좋은지! 차분하게 청소하고, 마음 정리하기에도 적합한 날씨다.
좀 쉬다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성수동에 어슬렁어슬렁 가볼까? 연휴라 여행을 간 사람이 많고, 평일이니 낮 시간에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다. 게다가 비까지 온다! 굽이굽이 줄을 서서 몇 시간을 대기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블루 보틀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 여유를 부려볼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얼씨구나, 좋구나! 이번 연휴는 마음껏 놀 궁리를 하고, 가까운 동네 여행도 떠나보자.
쉼은 중요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도 잠시 중단하고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에게도 잠시 멈춰서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게 지내면서 챙기지 못한 몸과 마음, 감정,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 말이다.
원래 샌드위치 휴일에 쉴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업무와 결혼 준비, 부모님 가게 이사, 내 집 이사 준비로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내가 남아있었다. 문득 우울한 감정이 들었다. 뭐, 좋은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는 거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모두 흘러가는 것이기에 괜찮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5일(수)에는 실장님 주재 회의가 있었는데 화장실에 들렀다 가려던 차에 실장님께서 먼저 회의실에 도착하셨다. 선배의 연락을 받고 후다닥 회의실로 달려가는 중, ‘아차! 여기는 사장실인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다른 층 회의실로 내려가 살짝 문을 여니 다른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뭐지...?! 아 맞다. 사장실 옆에 우리 회의실이 있지!’
또다시 후다닥 달려갔다. 사무실 구조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회의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는데 나 왜 이러는 걸까...!
- “안지영 선수, 많이 아픈가?”
짧은 보고를 마치니 실장님께서 물으셨다. 보고 목소리에 힘이 없었나 싶어 당황했다가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 “지영아 어디 아파?”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선배가 물었다.
- “아픈 건 아닌데, 요즘 계속 정신없이 지내서 조금 쉬면 좋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아프냐고 묻고, 걱정해주시니 내가 아파 보이나 싶고, 이러다간 진짜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도 샌드위치 휴가를 권장하니 쉴 수 있을 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차장님, 저 금요일에 휴가 내고 쉴게요. 아무래도 번 아웃인 것 같아요.”
- “그래, 지영! 사람들이 아프냐고 물어보잖아. 회의 전에 내가 너 아프다고 말씀드렸어.”
- “아하! 그래서~”
실장님께서 회의 시작 전 회의실이 비어 보인다고 없는 사람을 찾으시니까 같이 일하는 차장님께서 내가 아프다고 커버해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주변에서 아프냐고 물으니 진짜 아픈 것 같고, 이참에 휴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용기를 냈다. 웃픈 상황이 계기가 되어 휴가를 내게 되었는데 아싸리 잘 됐구나 싶었다. 쉬고, 충전해서 돌아와야지.
핫초코로 피곤함을 달래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실장님께서 돌아다니시면서 금요일에 쉬는 사람은 더 빨리 퇴근하라고 하셨다. 엥? 웃으면서 휴가 전 진행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서 실장님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다 보인다며 다가오셨다. 빨리 퇴근하라 하시는데 숨어서 일하려는 내 마음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겠지? 필요한 일을 후다닥 마치고, 노트북을 정리했다. 정시 퇴근보다 25분 빠른 시간이었고, 그룹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을 나왔다.
앞으로 4일의 휴가와 즐거운 주말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생각지 못 한 연휴와 이른 퇴근에 숨통이 트이고, 몸이 가벼워져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런 걸 보면 심리적인 것도 참 중요한 것 같다. 물리적으로 쉬는 시간이 심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정신력으로 무조건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어쩌다 휴가. 오랜만의 여유.
비는 더위를 식혀주고, 먼지를 가라앉혀 준다. 비가 지나가면 조금 더 선선하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겠지? 기대가 된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노는 시간을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