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법과 인생
제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분쟁연구소(CDRI : Corporate Dispute Research Institute)를 모티브로 한 연작소설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법률지식도 제공하고 저희 CDRI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알려드리려는 목적입니다. 극적 재미,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고려하여 극중 인물, 상황 설정등은 허구를 많이 가미했습니다. 그렇다고 100% 허구는 아닙니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습니다.
3회, 4회는 경영권 분쟁 중 전형적인 투자자와 대표이사간의 갈등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저희 CDRI가 주로 다루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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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진실해 보여 투자했는데, 막상 대해보니 완전 딴판입디다.”
신 변호사 앞에 앉은 김명호 사장,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어제 대표변호사 지시로 갑자기 진행된 오늘 상담.
알파수 신 변호사는 다 이해한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상담을 이어갔다.
“결국 사장님이 원하시는 것은 투자금 회수인 거죠?”
앗차!
여러 번 지적받았고 본인도 조심하려 하는데 또 튀어나왔네.
의뢰인과 상담할 때는 바로 결론으로 들어가지 말고 전반적인 배경설명을 들으면서 의뢰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또 ‘결국’이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상담한지 불과 5분 만에.
“아... 네... 그런 셈이죠. 그렇지만 젊은 친구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뭔가 경고를 주고 싶기도 하구요.”
상담의 내용은 이랬다.
김명호 사장은 1년 전 지인의 소개로 한 스타트업(편의상 R사)에 3억 원을 투자하고 그 회사 지분 20%를 받았다.
투자할 당시 R사의 대표이사로부터 향후 회사의 예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1년이 지나고 보니 그 말대로 되는 것이 없다.
회사 자금사정은 더 악화되고 있는데 과연 회사 내부에 이를 컨트롤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최근에 알게 된 바로는 R사의 핵심모델에 대해서 다른 투자자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해서 별도로 진행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김명호 사장은 자신의 투자금 원금을 돌려받고 싶어한다.
CDRI(기업분쟁연구소)가 담당하는 전형적인 투자분쟁관련 사건이다. 신 변호사는 김 사장으로부터 건네 받은 자료를 휙휙 넘겨가며 보다가 순간 굳은 듯이 멈췄다.
민/ 형 / 욱
“저, 사장님. 투자하신 업체 R사의 대표이사 이름이 민..형..욱..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신 변호사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R사 법인등기부에 나와 있는 대표이사의 나이를 살펴봤다. 1976년생. 그 사람이네.
꽤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젠 다 아물었으리라 생각했는데, 무방비상태에서 한 방 얻어맞은 느낌...
“변호사님, 제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네, 방법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신 변호사는 잡(?)생각에서 벗어나 다시 인공지능 알파수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
“사실 이미 회사에 투자하신 김 사장님으로서는 ‘내 투자금 돌려줘’라고 주장할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요즘 벤처캐피털(VC)들은 투자계약서를 체결할 때 나중에 일정한 사유, 예를 들어 회사 실적이 안 좋다거나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의 위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투자받은 회사나 대표이사가 벤처캐피털의 지분을 다시 사줘야 하는 바이백(buy back) 옵션을 걸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 사장님의 이 계약서에는 그런 옵션이 없군요.”
“네, 저는 그때 이 회사가 전망이 있을 거라고 속단하고 민 대표가 건네주는 계약서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었어요.”
“쉽게 말해서, 만약 사장님이 향후 전망을 좋게 보고 코스닥(KOSDAQ)의 한 종목을 주당 7,000원에 샀어요. 그런데 1년 후에 그 주식이 주당 2,00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럼 사장님이 회사에 ‘난 당신 회사가 전망이 좋을 것 같아서 주식을 샀는데, 주가가 많이 떨어졌으니 내 투자를 번복하고 싶다. 내 돈 돌려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이치입니다. 투자(invest)는 결국 자기 책임이거든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R사나 민형욱 대표로서는 김 사장님이 ‘내 투자원금 돌려줘’라는 요구에 응할 법적인 의무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 여러 가지 조치를 하게 됩니다.”
김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오호 그래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신 변호사는 순간 망설였다. 얘기를 하는 순간 이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텐데. 하지만 내가 얘기 안 해줘도 결국은 다른 변호사를 통해 진행될 수 있잖아.
신 변호사는 메모지에 하나씩 써가며 김 사장에게 설명했다.
“첫 번째로는 좀 과격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인데요, 민 대표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겁니다. 민 대표가 사장님께 투자를 받으려고 하면서 설명했던 내용 중에서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면서요? 그렇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속여서 투자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형법상 사기죄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민 대표가 되지도 않을 일을 크게 부풀려서 투자유치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오, 그거 가능할 것 같아요. 민 대표가 처음 제게 투자권유했을 때 설명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갖고 있는데요. 지금 와서 보면 그 파워포인트 내용 중에서 실행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네, 그런 자료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됩니다.”
음. 민형욱 이 사람. 제대로 걸렸네.
“두 번째로는 회사 경영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겁니다. 지금 말씀 들어보니 민 대표의 경영행태는 여러 가지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회사에게 회계장부열람, 등사신청을 해서 자료를 입수한 다음 기존 경영진의 위법, 부당한 업무집행에 관한 기초 자료를 수집합니다. 만약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법원에 회계장부열람, 등사가처분 신청을 해서 법원을 통해 받아낼 수 있습니다.
일단 장부를 받아서 검토하다보면 자금사용 등에서 문제가 많이 발견되거든요. 그러면 다음 수순으로는 불분명한 자금 사용을 문제 삼으면서 대표이사를 횡령이나 배임으로 형사고소합니다. 아울러 법원에다가는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신청을 냄과 동시에 이사 해임을 위해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우와, 정말 할 수 있는 게 많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제가 주도해서 민 대표를 해임시킬 수도 있는 건가요?”
“네, 가능합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민 대표의 ‘이사’ 자격을 주주총회 해임을 통해 박탈하는 겁니다.”
신 변호사는 답을 하기 위해 상법전을 뒤적였다. 김 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방금 신 변호사님 말씀대로 제가 민 대표를 해임시킬 수만 있다면, 아니 해임을 시키겠다고 충분히 협박만 할 수 있다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데요.”
상법 제385조 (해임)
① 이사는 언제든지 제434조의 규정에 의한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 정당한 이유없이 그 임기만료전에 이를 해임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있다.
② 이사가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행위 또는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중대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에서 그 해임을 부결한 때에는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3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총회의 결의가 있은 날부터 1월내에 그 이사의 해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야.. 이런 방법도 있었군요. 신 변호사님 정말 실력 좋으시군요. 이 사건 제발 꼭 맡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비용을 어떻게 지불하면 되나요?”
휴, 내 손에 피를 묻혀야 하나. 모르겠다. 민형욱 당신과 내 인연은 어똫게 이렇게 이상하게 흘러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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