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Aug 20. 2016

연작소설 : 기업분쟁연구소 24시 (제4회)

조우성 변호사의 법과 인생

제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분쟁연구소(CDRI : Corporate Dispute Research Institute)를 모티브로 한 연작소설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법률지식도 제공하고 저희 CDRI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알려드리려는 목적입니다.  극적 재미,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고려하여 극중 인물, 상황 설정등은 허구를 많이 가미했습니다. 그렇다고 100% 허구는 아닙니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습니다.      


3회, 4회는 경영권 분쟁 중 전형적인 투자자와 대표이사간의 갈등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저희 CDRI가 주로 다루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 지난회 보기(3회)
https://brunch.co.kr/@brunchflgu/1017




민형욱 대표는 1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찾아 물었다. 강병철 본부장이 들어왔다.


“최 변호사님은 뭐라 그러시던가요?”

“네. 자세한 건 의견서로 보내주시기로 했구요, 우선 간단히 보고드리자면...”     


사흘 전, 회사로 통고서가 도착했다. 투자금 돌려달라고 귀찮게 굴던 김명호 사장이 변호사를 통해 보낸 것. 반갑지 않은 통고서에서 예상치 않은, 하지만 너무나 잘 아는 변호사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형욱.     


강 본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김 사장은 투자자에 불과하니까 이미 투자한 돈을 회사나 대표님께 돌려달라고는 요구할 수 없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표님이 김 사장께 투자를 요청하면서 제시한 자료들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나 전혀 진행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면 형사적으로 사기죄 문제는 성립될 수 있다는군요. 물론 그 점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 방어 포인트를 만들면 된다고 합니다.”     


형욱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주주가 회사 상대로 하는 회계장부 열람, 등사 청구는 법상으로는 회사가 그 청구의 부당함을 증명하면 거부할 수도 있지만 실무상 거부는 거의 인정 안 된답니다.”


회사가 거부할 수도 있다고?     


“회사가 회계장부열람, 등사청구를 거부할 수 있는 경우는 언제인데요?”     


“판례에 따르면 열람ㆍ등사청구권 행사가 회사업무 운영 또는 주주들의 공동이익을 해치거나 주주가 회사 경쟁자로서 그 취득한 정보를 경쟁사업에 이용할 우려가 있을 경우, 또는 회사에 지나치게 불리한 시기를 택하여 행사하는 경우 등에는 회사가 거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거부가 인정되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상법 제466조 (주주의 회계장부열람권) 

 ①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3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이유를 붙인 서면으로 회계의 장부와 서류의 열람 또는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 

 ②회사는 제1항의 주주의 청구가 부당함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강 본부장은 메모 내용을 보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대표님, 사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지만 막상 회계장부 등을 미주알 고주알 따지면서 보기 시작하면 피곤해질 게 분명합니다.”     




사실 김 사장을 투자자로 참여시킬 때 형욱은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 회사 자금사정이 어려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김 사장에게 투자요청을 했지만, 김 사장은 원래 부동산 임대업을 하던 사람이라 형욱이 진행하려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도는 거의 없었다. 김 사장은 단기 수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형욱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당시는 사정이 급했기에 핑크빛 미래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솔직히 김 사장 마인드는 사채업자 마인드랑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투자를 했으면 좀 기다려줄 줄도 알아야지. 사실 2단계 투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회사에 큰 타격이 있을 텐데...”     


창업, 스타트업, IT벤처. 갖다 붙이면 그럴싸해 보이는 말들이지만 그 실체는 가련할 정도로 빈약했다.


사업 시작한 이후 내 월급을 가져가 본 일이 있던가? 직원들 급여, 외주 개발비 펑크 내지 않으려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빴다. 김 사장으로부터 투자받은 자금도 신제품 개발에 대부분 쓰였다.     


“강 본부장, 잘 알겠어요, 내가 좀 생각을 정리해 볼게요.”     




형욱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회사는 정말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이제 2달 후면 시제품이 출시될 것이고, 중국쪽 파트너와도 얘기가 잘 되고 있다.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전 직원이 밤을 잊고 일하고 있는데...     


형욱은 몇 번을 망설이다 통고서에 기재된 변호사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지수 변호사님 부탁합니다.”     

비서인 듯한 사람이 전화를 돌려줬다.


“여보세요, 신 지수 변호사입니다.”

“지수? 나... 형욱이야. 오랜만이다. 이게 5년 만인가...”


어쩔 수 없이 경직된 형욱의 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솔직히 형욱은 지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흘 전 받은 통고서에서 지수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뭔가 쨍 하고 속에서 깨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대체 그녀와 어디까지 함께 했으며, 어디부터 멀어졌는지, 그렇게 멀어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가물가물했다.      


“이 사건, 네가 맡아 진행하는 거 맞지?”

“응, 그래. 그렇게 됐어. 의뢰인이 꽤 억울해 하더라구”     


김 사장이 억울해 하더라는 그 말에 순간 형욱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뭐? 억울해 한다고? 대체 그 사람이 뭐가 억울한데?
그 사람이 이 사업에 대해 일말의 애정이라도 있긴 한 건가?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싸구려 마인드를 가진 거 아냐?”     

형욱은 목소리가 높아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통고서를 보니 마치 내가 무슨 범죄자인 것처럼 묘사돼 있던데, 변호사가 사실관계 확인도 안 해보고 이렇게 함부로 쓰면 되는 거야? 그게 법이고 그게 정의야?”     


지수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형욱씨. 아니 민 대표님. 김 사장의 법률대리인으로서 한마디 할게요.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중에 검찰이나 법원에 가면 가려지겠죠. 그런데 이번 일에서 정말 민 대표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나요?”     


신 변호사가 차분히 하지만 따지듯이 물었다.     


“내 잘못은..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지. 빨리 사업에 성공해서 그 양반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지 못한 것. 그게 문제겠지.”


형욱은 빈정거리듯 말했다.     


“민 대표님은 아직도 핵심을 놓치고 있군요. 김 사장은 민 대표님 회사에 투자해 준 투자자잖아요. 민 대표님 자금상황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거 아닌가요?

그럼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차근 차근 설명을 해줬어야죠. 돈만 받아놓고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니 투자한 사람은 궁금하지 않겠어요?”     


설명이라...     


“난 이렇게 배웠어요. 설명과 설득과 협상은 다른 거라고. 설명이 필요할 때 설득을 하려하고, 설득이 필요할 때 협상을 하면 안 된다고. 


지금 민 대표님이 놓치고 있는 것은 투자자에게 그 동안의 회사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거 아닐까요? 과연 그런 노력을 충분히 했나요?”     


신 변호사는 나지막한 톤으로 딱딱 끊어지듯 말을 이어갔다.


“민/형/욱/!
당신은 항상 설명이 부족해.
너무 일방적이야. 과거의 내게도 그랬었지.
당신의 일방통행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 잊지 않았음 해.
이만.. 전화.. 끊/을/게/요”     

탁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아...뭔가 핵심을 찔린 느낌.         

...



형욱은 인터넷을 뒤졌다. 


그녀가 너무나 좋아해서 질리도록 들었던 그 곡.

갑자기 그 곡이 듣고 싶어졌다.


죠지 윈스턴. Thankgiving.

형욱은 유튜브에서 그 곡을 찾아 무한 반복 설정을 해놓고 눈을 감았다.

아련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https://youtu.be/ZMd4crBRbPY






  

“대표님, 내일 오후쯤에 최 변호사님 시간 되신다는데, 회의 시간을 몇시로 잡을까요?”

강 본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 본부장. 일단 최 변호사님과의 회의는 좀 미룹시다.”

“네? 아무래도 통고서에 대한 대응준비는 빨리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 본부장, 지난 1년간 우리 회사가 추진했던 사업들의 진행상황, 그리고 하다가 중단됐던 프로젝트들 리스트를 좀 정리해 주세요.”


“이번에 2차 투자유치 때 투자자들에게 보여줬던 그 자료면 될까요?”


“아니요. 그건 아무래도 희망적인 수치가 반영된 건데, 그거 말고 지난 1년간 우리회사의 솔직한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 말입니다.”


“그건... 어디에 쓰실려고...”     


“김 사장을 직접 만나보려고 합니다.”


“네? 김 사장을요? 아니 이미 변호사를 통해서 통고서까지 보냈는데... 괜히 만나서 말씀 나누시다보면 약점 잡힐 우려도 있지 않을까요?”     


“문득 우리 설명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솔직히 그 분 투자금이 우리에겐 얼마나 요긴했었어요? 그 돈 안 들어왔으면 진짜 아찔했을 텐데. 돈을 받을 때만 그 분에게 신경 썼지 그 뒤로는 솔직히 우리 사업한답시고 그 분을 등한시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또 ‘말해봐야 모를 거다’면서 은근히 무시한 부분도 있구요.”     




“아.. 그거야 그 분 원래 태생이 그런 분이라.”


“내가 직접 만나서 그 동안 회사 사정을 솔직히 설명 드리고 사과도 할려구요.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처신을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그 점을 깨우쳐 주더군요. 한 방 맞은 느낌입니다.”     


강 본부장은 궁금한 듯 물었다.


“누가...?”


“음...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람과 간만에 통화를 했어요. 그 사람이 가르쳐줬어요.”     


아직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형욱의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그래,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사정 말씀을 드려보자. 부딪혀 보는 거지뭐.


그나 저나.. 예전 모습 그대로일까? 지수는. 아니다, 훨씬 더 성숙하고 지혜로와진 것 같다. 이번 일이 나와 지수를 다시 이어주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 지난 회 보기


1회

https://brunch.co.kr/@brunchflgu/1015

2회

https://brunch.co.kr/@brunchflgu/1016


매거진의 이전글 연작소설 : 기업분쟁연구소 24시 (제3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