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논어노트
대학시절 교양고전수업 시간에 논어를 들었다.
원문을 강독하고 관련된 역사적 사례들을 배우는 시간. 동양 최고의 고전이라 기대를 했건만 한 세 번쯤 우려낸 무색무취 녹차를 마시는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좋고 뻔한 소리, 시대에 걸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소리의 연속이라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글을 쓰기 위해 문헌을 뒤지다 논어 여러 구절을 다시 접했다.
자구(字句)는 바뀌지 않았을 터. 2000년간 그대로 일 텐데. 한 문장 한 문장이 어찌나 가슴 속으로 파고들던지.
논어 학이(學而)편에서는 나의 어설펐던 모습이 떠올랐고, 자한(子罕)편에서는 내 욕심으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멀어진 친구 K가 떠올랐다.
원문을 읽는데 과거 사례들이 실시간으로 오버랩되자 ‘아, 이 말을 하려 했던 건가’는 생각이 들었다. 글 읽는 이가 중고(中古)가 되니 이제야 고전(古典)에 대한 문리(文理)가 트이는 건가.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는 말했다.
“옛 것을 배워 익히고 그리하여 새 것을 알아내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여기서의 ‘온(溫)’은 익히다, 학습하다, 복습하다의 의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옛 것을 익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것을 배운다’고 볼 수도 있고
“옛 것을 깊이 파고들어가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이치를 찾아내어 배운다‘고도 볼 수 있다.
뒤에 나오는 ‘충분히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문맥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두 번째 해석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결국 ‘온고(溫故)’란 단지 ‘옛날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고전을 읽되 이미 내 삶 속에서 편린으로 남겨진 다양한 데이터들이 고전 속의 문구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내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단계로 승화되는 그 현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40이 넘었다면 이제 고전을 만나도 된다. 고전 속의 문구를 제대로 잘근 잘끈 씹어 먹을 삶의 내공이 쌓인 것이기에.
나의 찌질했던 방황이 고전을 만나 새로운 지혜로 발효되어 나타나는 경험을 해보고 싶지 않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