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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y 01. 2017

인정욕구 다스리기, 사람 제대로 알아보기(知人)

조우성 변호사의 논어 노트

 심리학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야 말로 인간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고 본다. 남에게 자기를 인정받는 일은, 자기가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로서,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기제라고 분석한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상당부분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렇듯 ‘남에게 인정받는 것’은 평범한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필수 아이템이라 할 것인데, 이와 관련한 공자의 생각을 엿보자.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논어 학이편-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서운해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진실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당연히 서운하다. 따라서 대놓고 ‘서운해 하지 말라’고 우격다짐하기에는 공자도 좀 미안했던가보다. 그래서 그랬나? ‘서운해 하지 않으면 군자 레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며 살짝 띄워준다.

‘군자, 멋지잖아? 군자가 되고 싶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삐치거나 야속해하지 말라구. 그럼 군자로 봐줄게. 한번 해보고 싶지 않아?’

살짝 약이 오른다. 닿기 어려운 경지를 던져놓고, ‘여기까지 오면 군자 스티커 하나 붙여줄게’라는 것과 뭐가 다르지? 말장난 같다. 차라리 군자 안하고 말지.     



하지만 잠시 화를 삭이고 논어의 구석구석을 좀 더 살펴보자.     


子曰,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자왈,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

- 논어 이인편


공자는 말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 만하게 되려고 노력하라.”     


‘인정욕구’에서 인정하는 주체는 타인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판단주체를 타인에서 ‘나’로 돌려보자 남들이 나를 알아주든 말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수준’이 타인의 인정을 받을 만한 정도인지 냉철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게끔 자기를 고양시키려는 욕구’로
욕구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나아가 공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가져올 수 있는 폐단을 넌지시 지적한다.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 논어 헌문편 - 


공자는 말했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갈고 닦는 데 힘썼고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에게 인정받는 데 힘쓴다.”     


‘위기(爲己)’는 ‘도를 자기 몸에 얻으려고 하는 것’이요, ‘위인(爲人)’은 ‘남에게 인정받으려 한다‘는 의미다(程伊川 ; 정이천). 

이와 관련한 다산 정약용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은 말을 앞세우지 않지만,
남에게 인정받는 데 주력하는 사람은
행동이나 실천보다는 말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다산 정약용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커지면 판단주체를 외부에 두게 됨으로 인해 스스로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의 인정을 받아내려고 행동이나 실천보다는 말이 앞서는 공허함을 연출하게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음이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 논어 학이편 -      


공자는 말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 혹은 남을 제대로 알아주지(평가해 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공자의 이 말은 기존의 가르침과 조금 모순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공자는 남이 자기를 잘 알아봐 주든 말든 그것은 크게 괘념치 말라면서도, 나는 남을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힘쓰지 말고 오히려 나를 더 고양시켜야 하지만, 반대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보다 못한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하며(無友不如己者. 무불여기자, 학이편),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비례물시, 비례물청, 안연편)고 한 공자야 말로 사람의 사귐에 있어 아주 까칠하고 높은 기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교류할 사람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해서 분별 있는 사귐을 하라는 주장.




공자가 지향하는 군자의 모습은 ‘주체적인 사람’이다. 평가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나’이어야 한다. 외부의 평가는 ‘주체적인 나’를 흔들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의 군자는 무척이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공자가 강조하는 바를 정리해 보자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남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통찰력의 제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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