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중국 후한(後漢) 학자인 최원(崔瑗)은 ‘좌우명’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좌우명은 자리(座)의 오른쪽(右)에 일생의 지침이 될 좋은 글을 쇠붙이에 새겨 놓고(銘) 생활의 거울로 삼은 것인데, 원래 좌우명의 시작은 문장이 아닌 그릇이었다고 한다.
이하는 공자가어(孔子家語) 삼서편(三恕篇)에 나오는 이야기.
공자가 노(魯)나라 환공(桓公)(재위 B.C 711~B.C.694)의 사당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있던 의례용 제기 가운데 ‘기울어진 그릇’을 보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에게 무슨 그릇이냐고 물었다. 사당을 지키는 사람이 ‘유좌지기宥坐之器,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릇’라고 답했다. (유宥는 오른쪽을 뜻함)
공자는 제자들에게 “무릇 ‘유좌’라는 그릇은 속을 비워두면 기울어지는 반면 반쯤 채우면 반듯하게 서고 가득 채우면 자빠진다. 그래서 훌륭한 임금은 이 그릇이 지극히 정성스럽다 하고 언제든지 자기가 앉아 있는 곁에 두고 경계의 자료로 삼았다.”고 했다. 뒤에 있는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유좌에 물을 부어 보아라”고 하자 제자들이 물을 부었다. 과연 공자의 말 대로 반쯤 물을 채우자 반듯하게 섰던 그릇이 물을 가득 채우자 넘어졌다.
이때 제자 자로가 앞으로 나서며 공자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가득 차고서도 넘어지거나 엎어지지 않을 도리는 없습니까?”
이 질문에 공자는 왜 그러한 도리가 없겠느냐면서,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어리석은 사람처럼 해야 하고, 온 천하를 덮을 만큼 공적이 큰 사람이라고 해도 겸손한 사람처럼 해야 하며, 온 세상을 벌벌 떨게 할 만큼 거대한 용기와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해야 하고, 세상 모든 것을 가질 만한 재물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공손한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위 이야기는 순자, 설원 등에도 비슷하게 나온다) https://blog.naver.com/banditj/221388868968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인 하백원이 유좌지기 잔을 만들었는데, 이를 계영배(戒盈杯)라고 한다.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술을 부으면 70%까지 채울 때는 술이 그대로 있지만, 그 이상을 넘으면 술이 없어진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 역시 이 잔을 항상 곁에 두고 과욕을 경계한 덕분에 조선시대 최고의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전해진다.
‘겸손하라’, ‘양보하라’는 얘기를 고리타분한 교훈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의 이치를 다루는 주역(周易)에서 겸손을 뜻하는 ‘지산겸(地山謙)’괘를 최고의 괘로 칭하고, 대표적 처세서인 채근담에서 양3분(讓三分 ; 내 몫의 3할을 덜어서 남에게 주라), 감3분(減三分 ; 내 공의 3할을 덜어서 타인의 몫으로 돌려라)을 가르치는 이유는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상 인심은 수시로 바뀌는데, 한 평생을 평안하게 살아가려면 항상 조심해야 하고, 그 조심의 출발이 바로 나의 도드라짐을 막아서 사람들의 경계를 피하라는 의미다. 사람이 가장 무서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