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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un 26. 2022

어머니에 대한 추억

# 1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험치는 건 잘 했는데, 하기 싫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글짓기’. 그땐 글짓기 숙제가 많았다. 주제를 던져 주고 ‘내일까지 하나씩 써와라’는 숙제. 나는 집에 와서 어머니께 SOS를 쳤다. 그러면 어머니는 밤에 메모지에 글짓기 초안을 적어 놓으신다. 나는 다음날 아침 좀 일찍 일어나 어머니의 초안을 노트에 옮겨 적어 학교에 제출한다. 2학년 내네 글짓기 숙제는 어머니 차지.



헉, 그 와중에 나는 글짓기 상을 2번인가 받았다. 어린 마음에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선생님은 ‘우성이는 공부도 잘하고 글짓기도 잘하네’라면서 칭찬해 주셨다.



# 2


3학년이 되자 학교에서는 여러 대회를 겨냥한 특활반을 운영했는데 ,그 중에 ‘글짓기 반’이 있었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는 글짓기 반에 차출되었다. 글짓기 반 아이들은 매일 방과 후에 모여서 그 날 선생님이 던져주시는 제목의 글 하나를 쓰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글짓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정말 고역이었다. 더구나 어머니 도움을 받을 수 없이 혼자 써야 했으니. 난 실력이 뽀록날까봐 두려웠다. 초등학교 3학년 그 시절은 정말 괴로웠다. 하지만 꾸역 꾸역 매일 한편씩의 글을 써냈다.



#3


4, 5.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이젠 나 스스로 온전히 글을 써서 상을 받는 일이 많았다. 특히 고향 밀양 아랑제(지방 향토 축제)에서의 백일장, 학교 대항 백일장 등에서도 1, 2등상을 탔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가 써주신 숙제를 음미하면서 복기하고 필사했던 경험이 내 글짓기 실력의 기초가 되어 주었고, 그 후 실력이 뽀록날까봐 바짝 긴장하며 글을 썼던 것이 나를 키워 주었다.



# 4


대학교 3학년시절.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1차 과목에는 ‘세계사’가 있었는데, 중국 근현대사 부분에서 많은 문제가 출제되곤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교과서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험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한때는 공산당 간부 이름을 묻는 객관식 문제도 나왔다. 모택동, 주은래 같은 top 급 간부가 아니라 중간 간부급 이름까지 알아둬야했다.



당시 가장 정평 나있는 ‘중국 근현대사’ 책을 샀는데, 그 책은 수험서가 아닌 학술서였기에 친절함이 없었다. 어려운 한자 이름이 ‘음을 달아놓지 않은 채’ 그대로 기재되어 있었다.



# 5


대랙 100여명 정도의 이름이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었다. 대략 어떤 음일지 감을 잡을 수는 있는데 어떤 글자는 처음보는 것들이라 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음을 모르니 이름을 외우기가 힘들었다. 그때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SOS를 쳤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한자 옥편(玉篇)을 펴시고 신문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를 공부하시곤 했었다.



“어무이, 이 책에 나오는 한자들, 옥편에서 찾아서 음을 좀 달아주실 수 있겠습니꺼?”



어머니는 본인이 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하시겠다며 책을 보내 달라고 하셨다.



# 6


2주 후에 책은 다시 내게 배달되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어려운 한자 옆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색깔별로 한글 음을 병기해 놓으신 것이다.



瞿懋淼(구무묘), 张国焘(장국도), 廖恩煦(료중개) 이런 식으로.


한글 음이 있으니 이름을 외우기 훨씬 수월했고, 결과적으로 세계사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 7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꾸 쇠약해져 가시는 것을 보니, 예전 생각이 부쩍 많이 난다. 기억 속에 언제나 지혜롭고 단정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능한 한 어머니와의 추억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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