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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Aug 24. 2022

토사구팽 깊이보기(3) - 관계의 역동성

#1


토사구팽은 단순힌 배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는 관계의 역동성에 관한 심오한 인사이트가 숨어 있다.


#2


- 때로는 토사구팽이 필요? -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책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에서 누구나 지도급 지위에 오르면 자리가 낮았을 때 사귀었던 친구들부터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낮은 자리에 있을 때의 친구는 성공한 자신에게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 사귀는 친구들과도 융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마디로 출세한 사람은 추억 속 왕년의 죽마고우(竹馬故友)나 학창시절의 단짝을 되도록 빨리 잊어야 앞으로의 발전에 지장이 없다는 아주 냉정한 조언이다. 


나아가 앨빈 토플러는 옛날 친구를 정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옛날에 다니던 사교클럽이나 동호인 모임에는 가끔 빠지다 나중엔 아예 발길을 끊으라)까지도 소개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음미해 볼 부분은 분명 있다. 내게 편안함을 주는 과거의 친구들보다 자극과 긴장을 주는 현재 지인들과의 만남이 더 많은 효용을 줄 수도 있으리라. 한번씩 과거의 매듭을 짓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3


- 토끼는 과연 사냥개의 적일까? - 


주인은 왜 사냥개가 필요했나? 토끼를 잡기 위해서였다. 막상 더 이상 잡을 토끼가 없어지면? 사냥개는 필요가 없어진다. 사냥개는 죽기 살기로 토끼를 잡으려 노력 했다. 하지만 그 사냥개 자신의 운명이 결국 토끼의 운명과 같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뫼비우스 띠인가.


지금 맹목적으로 쫓는 그 토끼가 사라지고 나면 나 역시 사라지지 않을까. 내가 조직에서 이룬 성과가 역설적으로 내 효용가치를 없애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토끼가 한 마리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언제든 필요하면 또 사냥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토끼 사냥이 아니라 늑대 사냥이 필요하다면 토끼 사냥에 특화된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토끼는 내 적인가, 아니면 운명 공동체인가. 관계를 그저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껏해야 주인은 토끼 정도 잡는 사냥개로 생각하는데 본인은 늑대나 호랑이를 잡는 사냥개로 착각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불행이다. 주제파악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예전에 어느 역사학자분과 식사하던 중 들은 이야기인데 무척 인상 깊었다. 


“옛 전쟁에서는 적의 허실을 엿보거나 적장의 화를 돋구기 위해 앞에 내보내는 '부장(副將)'급 똘마니가 있었습니다. 대개는 그냥 버려도 아깝지 않은 자를 내보냈는데, 정작 본인은 충성심이나 용맹을 인정받았다고 착각하곤 했죠.” 


본인이 생각한 과업의 평가가 보스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본인이 느끼기엔 토사구팽일 수 있으나, 이는 애초부터 낮은 평가가 예상된 것이었다. 본인만 몰랐을 뿐이지.


#4


- 조직의 성공이 반드시 개인에게 좋은 일일까? - 


토사구팽의 관점에서 보면 조직의 성공은 조직원에게 위기가 될 수 있다. 관계가 언제까지 그대로 갈 것이라 장담하지 말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성공을 이룬 조직의 조직원들은 긴장해야 한다. 조직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조직원에게는 조직의 성공 자체가 비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조직원을 챙기는 그런 살가운 리더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리더들이 더 많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배신 당했어요’라며 억울해 할 일만 남는다. 사실 이미 조짐이 있었건만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 따름이다. 


#5


이렇듯 토사구팽을 단순히 배신의 프레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관계의 역동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그 부조화의 결과물로 생각한다면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깊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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