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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Aug 27. 2022

<나를 바꿀 것인가, 판을 갈아 엎을 것인가>




8년 전, 대형 로펌에서의 월급받는 생활을 마치고 개업을 했다. 주니어 변호사, 송무 직원들을 뽑고 내가 월급을 주는 삶으로 바뀌었다.



큰 조직에 있으면서 여러 유형의 선배들을 봐왔기에 내가 나중에 보스가 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상(像)을 잡아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동양고전이나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고 강의도 했기에 멋진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진심으로.



부푼 꿈을 안고 시작된 사장 생활.


만만치 않았다. 여러 가지가 다 힘들었으나 특히 사람 문제가 어려웠다.



평생 같이 갈 것처럼 다짐을 했다가 조건 때문에 다른 곳으로 총총히 가버리는 주니어 변호사를 보고는 그 동안 내가 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 허공으로 날아간 건가 라는 생각에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송무 담당 직원으로서 업무를 하면서 자기발전을 위해 다른 자격증도 따보라면서 지원도 하고 멘토링도 했는데, 아주 사소한 일로 회사에 클레임을 제기하더니 다른 직원에게까지 그런 일을 퍼뜨려서 사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직원을 보고 정말 마음이 상했다. 



이 조그만 조직도 한마음으로 가지런하게 만들지 못하는 내 초라한 리더십에 얼마나 좌절했던가. 속도 모르는 다른 기업에서는 내가 발간한 책을 보고는 ‘리더십’에 관한 강의를 해 달라고 하는데, 정작 나는 리더십이라는 말만 들으면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으니. 스스로 용납이 안 되었다. 내가 외부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전부 위선같이 느껴졌다. 자책의 시간이 꽤 길었다.



내 성격상 한번 들인 사람은 웬만해서는 같이 가자는 주의다. 그것이 리더십의 본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조직이 이렇게 잘 융화되지 않는 원인이 내가 아닌 조직원 몇 몇에게 있는 건 아닐까 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분위기가 이렇다면 좀 생각을 달리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직원 개개인과의 심층 면담 등을 통해서 조직에 해가 되는 몇 명이 사실상 부정적인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 내 본성과는 맞지 않지만 악영향이 계속 발생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간을 들여 그 직원들과 무난한 이별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 직원들이 나간 후 새롭게 구성된 후에는 조직이 잘 굴러가고 나 역시 멋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원래 꿈꾸던 그런 분위기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들이 계속 오류를 일으킬 때,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노력하다 안 되면 마지막으로 쓰는 방법이 껐다 켜는 것(리셋). 이렇게 리셋하면 다시 정상가동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이미 오류가 생긴 상황에서는 해당기기의 메모리(ram)에 찌꺼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찌꺼기가 있는 상태에서 오류를 잡으려면 그 찌꺼기가 계속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리셋을 해야 한다는 것.



논어에 나오는 "회사후소".  그림그리는 일은 (물감을 마련하는 것보다) 바탕을 깨끗이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더러운 바닥에 계속 물감을 덧칠해봐야 예쁜 그림이 안 나오기에. 



조직을 운영하다가 계속 문제가 있을 때 무조건 리더인 내게 문제가 있었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조직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내가 제대로 된 사람과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 논어는 기본적으로 '知人', 즉 '사람을 파악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어렵다는 말이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한번 갈아 엎어야 하는 건지. 그 판단을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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