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호사 시보를 왜 화장품 회사에서 하라고 해?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변호사, 태평양 로펌에 기다>는
조우성 변호사가 1997년 법무법인 태평양에 입사하여
파트너 변호사로 성장하기까지의 경험과 느낌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2024년 초 출간 예정으로 작업 중입니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 변호사 시보를 왜 화장품 회사에서 하라고 해?


내가 사법시험을 합격한 때가 1991년.


그 당시는 합격 후 2년간 사법연수 과정을 거쳐야했다.

1992년(1년차)은 서초동에 있는 사법연수원에서, 1993년(2년차)은 법원 6개월, 검찰 4개월, 변호사 2개월의 시보(試補 ; 수습생) 과정을 거쳐야했다.


1992년 1년차 끝 무렵에 자기가 시보생활 하기를 원하는 법원, 검찰을 지원하고, 변호사 사무실의 경우는 뺑뺑이를 돌렸다. 나는 법원은 서울남부지방법원, 검찰은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의 부산지방검찰청을 지원했고, 다행히 지원한 곳들이 수습기관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변호사 시보하는 곳이 좀 특이했다. 보통 ‘000법률사무소’와 같은 식으로 변호사 성함을 딴 법률사무소로 수습기관이 지정되었는데, 나는 ‘태평양’이라는 곳이었다. 서소문동에 위치해 있고.


‘태/평/양?’

왜 화장품 회사에서 변호사 수습을 하라는 거지?

(찾아보니 원래 화장품 회사이던 ㈜태평양은 2002년에 ㈜아모레퍼시픽으로 회사명을 바꾸었다. 따라서 1993년 그 당시만 하더라도 태평양은 화장품 회사로 훨씬 더 유명했었다)


나는 사법연수원 시절만 해도 변호사로 법조생활을 시작할 생각은 없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다들 공무원 생활을 한 다음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이 일반적인 때였다.


나 역시 공무원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연히 공직에 먼저 진출할 생각이었고, 구체적으로는 판사보다는 검사가 되고 싶었다. 당시 우리 사법연수원 동기는 280명 남짓이었는데, 성적순으로 150등까지는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었다. 성적이 좋은 분들 중에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바로 변호사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니 본인이 원하면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4개월간의 검찰 시보 생활을 거치며 현타(!)를 맛보고는 나의 진로에 고민이 생겼다. 과연 검사가 내 적성에 맞을 것인가 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검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방향성을 잃어버린 공허한 가슴을 부여안고 변호사 시보생활을 하러 1993년 9월, 서소문에 위치한 신아빌딩을 찾았다.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 옆에 위치한 빨간 벽돌 건물, 신아빌딩. 거기에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이야 법무법인 태평양은 아주 유명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법무법인’이나 ‘로펌’이라는 단어는 우리 같은 사법연수원생들에게도 무척이나 생소했다. 더구나 이름도 화장품 회사같은 ‘태평양’이라니.

그런데 첫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사무실 전경이 너무 깔끔했다. 사실 지금와서 보면 그 당시 신아빌딩 사무실도 그리 양호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내가 그 직전 4개월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된 시설 수준을 가진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시보생활을 하고 온 터라 대비효과가 대단했다.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변호사 사무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당시 변호사 사무실은 변호사 방이 하나 있고, 홀에는 사무직원 2-3명이 일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당시 태평양은 약 30여명의 변호사와 20여명의 남녀직원들이 5개 층을 나눠서 쓰고 있었는데, 각 변호사 방마다 특색 있는 인테리어가 눈에 뛰었고, 말쑥한 변호사들과 직원들이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이 마치 대기업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 서동우 변호사와 한이봉 변호사가 있대.”


같이 태평양으로 배정된 동기생이 이런 정보를 줬다.


잉? 그 유명한 서 변호사님과 한 변호사님? 사법시험 공부할 때 먼저 합격한 사람들의 합격기나 그들의 공부 노트를 고시 잡지를 통해 접하게 되는데, 위 두 분은 거의 수석 수준으로 합격하신 분들이라 후배들에게 유명한 분들이었다.


‘아니, 그런 분들이 법원이나 검찰로 안 가시고 변호사를 바로 시작하셨다고?‘


상당히 의외였다. 성적이 뛰어난 분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루트였는데, 바로 변호사로 시작?


이처럼, 태평양은 나에게 갑작스럽고도 생소하게 훅 들어왔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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