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네, 강의 한번 하게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 (8) 자네, 강의 한번 하게



#1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마음이 붕 떠 있던 1992년 가을 무렵. 둘째 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우성아. 진짜 축하한다. 다음 주에 서울 신림동에서 한번 보자. 내가 누구 소개시켜줄게.”



대전에서 ‘입지원(立志院)이라는 고시원을 운영하시던 삼촌. 그래서 나는 대전삼촌이라 불렀다. 삼촌은 젊은 시절, 오랫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직지사에 아는 스님의 소개로 방을 하나 얻어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 절에 놀러 온 여대생들에게, 스님의 ’여기 전도 유망한 고시생이 한 명 있는데, 누가 이 사람을 도와서 큰 일 한 번 해보지 않겠소?‘라는 근사한 권유에 빠져 삼촌과 연애를 하게 된 대전 숙모. “내가 팔자 고치려다가 평생을 고시원에서 밥 하고 있다”며 허탈해 하시는 숙모의 넋두리에 내가 괜히 미안해지곤 했었다.



#2


삼촌은 내가 고시공부를 할 때, 본인 고시원에서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을 자주 읊으시며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조카가 시험에 합격했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근데 누굴 소개시켜 준다는 말씀이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분이 바로 이재국 관장님.


당시 신림동에는 고시학원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태학관’.


삼촌과 이 관장님은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이 관장님도 고시 공부를 하셨고.


삼촌은 자랑스럽게 이 관장께 날 소개했다. 그러자 대뜸 이 관장의 말씀.



#3


“그럼 자네 우리 학원에서 강의 한 번 하게.”


네? 강의요?



“이제 시험 합격했는데... 무슨 강의를?”



그러자 삼촌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교수들 강의하고는 또 다르지. 넌 이제 막 시험에 합격했잖아. 그러니 네 공부법이나 최신 자료 같은 걸 갖고 수험생들에게 실전적인 노하우를 알려주면 좋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해 보는 거, 그거 아주 좋은 경험이야.”



그래서 전혀 계획에도 없던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날짜까지 잡았다.


첫 강의는 과목을 특정하지 않고, 내가 공부했던 전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간증 형태로 설명하는 강의를 하기로 했다. 세상에... 내가 강의를 하다니.



#4


그 동안 내가 사람을 상대로 가르쳐 본 것은, 중,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개인 과외를 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고시생들, 더구나 나보다 더 나이 많고 경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고? 삼촌과 이 관장님의 강권에 못이겨 등 떠밀리듯이 강의를 준비하게 되었다.


강의날짜가 다가오자 긴장이 되어 잠이 안 왔다. 혹시라도 버벅대면 어떡하지? 또, 어린 나이에 시험에 합격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체 하는 걸로 비친다면 그건 또 어떡하지?



걱정에 잠 못 이루다 ‘강의 대본’을 쓰기로 했다. 내가 강의날 해야 할 말을 토씨 하나 안 빼고 다 A4용지에 적었다(이때는 아직 PC를 사용하기 전). 열심히 적다보니 10장이 넘었다. 나는 그렇게 정리된 대본을 며칠 동안 반복해서 읽으며 외웠다. 그렇게 나의 첫 강의를 맞게 되었다.


“강의 한 번 하게”라고 하신 이 관장님의 권유 한 마디가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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