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공적인 첫 강의, 마이크 밥을 먹게 되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 (9) 성공적인 첫 강의, 그리고 마이크 밥을 먹게 되다

#1

얼떨결에 맡게 된 합격생 강의는 아주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나를 포함해서 3명의 합격생이 연사로 나와서 각자 자신의 공부법을 설명했는데, 내가 제일 준비를 많이 했더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전수(!)한다는 마음으로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 그리고 강의 끝에는 고시생 동료들에게 힘을 주겠다는 마음에 내가 준비해 간 시(詩)도 하나 낭송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명의 서’. 고시공부할 때 항상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던 비장한 시였기에, 그 시를 읽어드리며 힘을 내시라고 말했다. 당시는 감정과잉의 시대였으니.

#2

정신없이 강의를 마쳤는데, 몇 명의 고시생분들이 내게 인사를 하러왔다. 그 분들이 내게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진짜 진심으로 우리가 잘되라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동안 좀 다운되어 있었는데, 강의 듣고 힘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나 역시 고시지옥에서 허둥대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간신히 그거 붙잡고 탈출한 것이었기에, 그 분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진심이 전해졌었던 걸까.

그 분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니, 가슴 속에서 뭔가 설명하기 힘든 뭉클함이 피어올랐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가 바로 소위 ‘강의 뽕(!)’을 처음 맞은 순간이었다. 그것도 강력한 강의 뽕을...

#3

이 관장께서 말씀하셨다.

“자네, 소질 있는데? 사람들이 자네 칭찬 많이 해. 어차피 사법연수원 가려면 몇 달 남았으니 남은 기간 동안 우리 학원에서 강좌 개설하고 강의를 좀 하게. 어떤 과목을 할래?”

해보고 싶었다. 이거 이거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일단 나는 내가 자신 있는 헌법과 행정법 강의를 하기로 했다. 바로 강의 날짜를 잡고 나는 강의안 준비에 몰두했다. 신림동 고시원 곳곳에 ‘헌법 1차 특강, 조 00 합격생(33회)’, ‘행정법 서브노트 특강, 조00’이라는 전단지가 붙었다. 그때는 합격생의 경우 이름을 안 밝히고‘ 00’으로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나는 강사로서의 내 이름을 ‘조땡땡’이라 부르곤 했다.

#4

내가 남들보다 PC나 워드프로세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강의 준비 때문이었다. 할부로 PC를 사고, 아래아 한글 1.5버전을 깔고서 열심히 강의안 준비를 했다. 출력이 문제였는데, 디스켓을 갖고 가면 학원에서 프린터로 출력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신림동 강사 중에서 워드프로세서로 자료를 준비해서 나눠 준 거의 시조새 같은 사람이었다.

#5

보통 특강을 하면 20-30명 정도의 수강생이 강의를 들었다. 내 기억에 그 당시는 수강생 수에 따라서 강사료를 지급받은 것이 아니라 ‘시간 당 얼마’ 이런 식으로 강사료가 책정되었었다. 하지만 수강생이 너무 적으면 학원에 손해가 날 것이었기에 최소한 20명 이상의 수강생은 올 수 있기를 바라며 강의를 진행했다.

이렇게 강의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학원의 강사 샘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 날 이 관장께서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아, 신 선생이라고... 지금 이제 막 형법 강의를 하시는데. 서로 알고 지내라구. 지금은 이제 시작이라 수강생이 많이 없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일 있을 거야. 이 분은 전업 강사신데...”

그래서 인사를 나누게 된 그 분이 바로 고시생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 신/호/진/ 쌤.

이렇게 나는 마이크 밥(!)을 먹게 되었는데, 뒤에 밝히겠지만 ‘강의’라는 행위는 내 인생에 정말 다양하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신호진.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 자네, 강의 한번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