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41) 태평양스러움?
#1
내가 처음 태평양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농담처럼 들었던 말이 있다.
“조변은 참 여러 모로 태평양스럽구만.”
‘태평양스럽다’라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시골 출신이라 촌스러움이 있다. 그리고 투박하다. 세련미는 없다. 하지만 인간적이고 우직한 면이 있다. 마당쇠기질도 있다.’ 뭐 이런 복합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2
자주 비교되는 대상이 김앤장이다.
“김앤장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법조인인 친구들이 많아. 하지만 태평양은 거의 개천에서 용난 경우지. 집에서 유일한 법조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고등학교도 소위 이름있는 명문고등학교 출신보다는 지방에 덜 유명한 고등학교 출신들이 많고. 소위 배경을 보면 별 게 없지.”
“옷 입는 것 보면 알아. 김앤장엔 드레스코드가 있는 것 같어. 다들 아주 말쑥해. 법원에서 보면 김앤장 변호사들은 티가 나. 그런데... 반대로 태평양 변호사들도 티가 나. 딱 태평양스럽지. 그런 점에서 조변은 태평양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구만.”
음. 칭찬이여 뭐여...
#3
선배들이 태평양의 독특한 문화로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가족’같은 집단을 지향한다는 점. 다른 로펌은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빈번하다. 반면 태평양은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한참 뒤부터는 태평양에도 입출입이 좀 생겼지만 내가 태평양에서 10년 동안 일할 때까지만 해도 태평양에 들어왔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퇴사하는 사람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직이 약간 정체된 느낌이 든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래서 가족적인 끈끈함이 있다.
두 번째는 민주적인 운영을 지향한다. 내가 와서 놀란 것은 한 번씩 전체 회의를 할 때 주니어 선배들(3-4년차)이 파트너 변호사들에게 과감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격한 말이 오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하게 지낸다. “원래 그래. 선배 앞이라고 할 말 못하면 안 되지. 일단 할 말은 하고, 그리고 그 뒤에 예의는 지키는 거지. 대표변호사라고, 파트너 변호사라고 마음대로 일을 집행하지는 못해. 전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하지.” 일례로 ISK(김인섭 대표변호사)의 아들이 군법무관 마치고 태평양에 입사하려 할 때 선배들이 반대표를 던져서 그 양반이 태평양에 결국 입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건 역차별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하여튼 그만큼 변호사 한 명 한 명의 발언권이 센 편이었다.
참고로 ISK는 1986년 법무법인 태평양 개소식에서 구성원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첫째는 로펌이 영원히 존속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아서 넘겨주겠다는 것. 둘째는 65세가 넘으면 직업 변호사를 은퇴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분에게 리더십을 넘겨주겠다는 것. ISK는 만 65세가 되시던 2002년에는 법무법인 태평양 개소식 당시의 약속을 지키고 대표 자리에서 은퇴했다. 아울러 본인 소유의 로펌 지분을 모두 태평양에 귀속시키고 '명예 대표 변호사'라는 이름만 갖고 떠나셨다. 멋진 리더...
세 번째는 돈 되는 일이라도 가려서 하고, 항상 정도를 지키자는 주의가 강했다. 구글의 이념인 “Don’t be evil.”의 로펌 버전 정도라고나 할까. 큰 돈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 정신에 어긋나면 사건을 수임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은 나도 그 후 여러 사건의 수임과정을 보면서 많이 경험했다. ‘돈 보다 자존심을 지키자’는 이 spirit은 내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네 번째는 송무가 특히 강하다는 점이다. 김앤장이 자문에 강점이 있다면 태평양은 송무, 즉 싸움에 더 일가견이 있었다. 태평양에는 투사들이 많았다. 집요하고 쉽게 지치지 않으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전투적인 마인드. 태평양 선배들은 항상 이 점을 강조했다.
다섯 번째는 본의 아니게 남자 중심의 로펌이라는 점이었다. 꼭 여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 자체가 좀 터프하고 세밀하게 챙겨주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남성 위주의 색깔이 강했다. 그런 의미에서 byh(황보영 변호사)의 존재는 특이했다. 최초 태평양의 여성 변호사이면서 여성 파트너였으니.
#4
내가 처음 입사할 당시(1997년)만 하더라도 ‘태평양’이 법조계에서 그리 압도적인 위상은 아니었다. 특히 김앤장에 비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태평양 식구들은 태평양 spirit을 생각하며 자존심을 지키고 일하려 노력했다.
이제는 '태평양'이라는 이름이 법조계에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다. 내 친정이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바깥에서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