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66) 사내 법무팀 커뮤니티에 로앤비를 알리다
#1
내가 바닷물에 돌 던지듯 막막한 세일즈를 하고 있는 동안 이해완 CEO와 안기순 변호사는 대형 계약을 따냈다. 태평양 측 지원사격을 받아 두 사람은 S그룹 법무팀을 설득해서 로앤비 ID 100개를 도입하게 한 것이었다. ID 개수도 의미 있지만 S그룹이 로앤비를 쓴다는 것은 훌륭한 세일즈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니까. 그 날 로앤비 경영진은 호프집에서 서로의 노고를 칭찬했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나로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지속적이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깊어갔다.
#2
“조 변호사님? 저 D물산 박 과장입니다. 오늘 저녁에 괜찮은 술자리가 있는데 오시면 좋겠는데...”
박 과장? 최근에 ID 3개 구입해 준 사람이다. 술자리에 오라고?
이게 그건가? 자기 술자리에 와서 돈 내고 가라는? 같이 술 마실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난 거절할 수 없어서 오케이라고 했지만 영 찜찜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세일즈를 하는 게 맞나?
난 이 일을 이해완 CEO께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오늘 제가 술값을 좀 내야 할 것 같은데, 법인카드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ID 3개면 월 9만원인데. 오늘 대체 얼마의 술값을 쓰게 되는 걸까? 이거 완전히 밑지는 장사인데. 이게 세일즈맨의 비애인가 싶었다.
#3
그 날 저녁 약속대로 명동에 있는 호프집에 갔다. 박 과장 외에 4명이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내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박 과장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양반이 태평양 변호사신데, 신기한 일도 하시더라구. 인터넷 법률정보 사이트를 만드신 분인데, 내가 그거 써보니 업무에 아주 도움 되더라.”
알고 봤더니 박 과장은 인터넷 커뮤니티인 ‘사내 법무팀 모임’의 일원이었고, 오늘은 그 중 친한 몇몇 사람과 술 한 잔 하는 자리였다. 다들 중견규모 이상 기업의 법무팀 인원들이었다.
나는 세일즈맨 모드로 바꾸고 로앤비 서비스 장점을 읊어 나갔다. 2명 정도는 관심 있어 했고, 나머지 2명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4
술이 들어가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 한 명이 말했다.
“사법시험 공부 다시 해 보려고 하는데, 내가 신림동 있을 때랑 요즘은 책도 많이 바뀐 것 같고... 어떻게 시간 배분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자 다른 한 명도 “나도 내심 사법시험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밥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계속 마음에 한으로 남네.”
당시만 해도 사법시험에 도전하다가 실패하면 사내 법무팀으로 취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도 그런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 사이버 고시촌장으로 이름이 난 ‘한 때 신림동 고시촌의 1타 강사출신’ 아닌가. 나는 대화에 끼어 들었다.
#5
“제가 한때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대비 강의를 몇 개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갖고 있던 정보를 활용해서 하이텔에 ‘F1’이라는 동호회도 만들었구요. 요즘 시험 경향 등에 대해서 저는 계속 팔러업 하고 있는데요...” 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을 잡고 사법시험을 돌파해내려면 어떤 식으로 시간확보를 해야 하는지, 또 공부 순서 같은 것들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자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잊었던 꿈을 다시 떠올리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졌다. 나는 이들에게 뭔가를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법인카드로 계산을 하려 했더니 박 과장이 손사래를 쳤다. 자기네들 회비가 있으니 괜찮다고. 그리고 오늘은 박 과장이 내게 로앤비를 홍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라 말하며 웃었다. 아, 이 양반. 진짜 괜찮네?
#6
나는 집에 돌아와 아직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요즘 바뀐 출제경향, 그리고 가장 정평 있는 수험서 목록을 받았다. 나는 제일 잘 나가는 민법과 형법 수험서 1권씩 5세트를 사서 박 과장에게 보냈다.
“박 과장님. 이게 요즘 신림동에서 가장 많이 보는 책이랍니다. 제가 불에 기름을 좀 끼얹을게요. 전날 모인 그 분들에게 제가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박 과장님이 좀 나눠주세요.” 박 과장은 정말 고마워했다.
각 선물을 받은 이들은 내게 다 전화나 문자를 줬다. 특히 제일 처음 사법시험 고민을 말했던 그 사람은 자신이 왜 사법시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적어 보냈다.
#7
박 과장이 뿌린 씨앗은 바람을 타고 훨훨 퍼져갔다. 그 날 모여 있던 사람들 중 3명이 자기네 회사에 로앤비를 도입했고, 실제 써보니 좋다는 말을 커뮤니티에 올렸다. 일종의 간증을 한 셈. 원래 로앤비의 주타겟이 사내 법무팀이었으니 완전 제대로 영업을 한 셈이었다. 이렇게 나의 세일즈는 사내 법무팀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한걸음씩 나아가게 되었다.
p.s. 그 때 내가 책을 선물한 사람 중 한 명은 몇 년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지금은 법무법인 M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정말 훈훈한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