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72) 다시 태평양으로
#1
2002년 8월 말, 그 날도 로앤비 교육강좌가 있어서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강의를 마치고 지친 상태로 사무실에 복귀했다. 장 재무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사님, 이번 달 드디어 손익분기점 넘었습니다.” 진짜? 드디어? 우와.
2000년 11월에 법인설립이니. 장장 얼마만이냐. 감격스러웠다.
그날 저녁 로앤비 경영진들은 모여서 자축의 술 한잔을 했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달만 우연히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영업으로 축적된 고객이 제법 쌓인 것이었다. 어차피 매달 ID 가격을 받는 것이므로, 그 고객이 끊어지지만 않으면 계속된다. 그 누적 고객이 상당수에 이른 것이다. 진짜 바다에 돌맹이 던지는 심정이었는데, 이것도 누적이 되는구나. 이제 우상향으로 성장할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로앤비의 경영고문을 맡아주던 태평양의 표인수(ISP) 변호사께서 나를 보자고 하셨다.
“조 변호사, 로앤비 손익분기점 돌파한 거 축하해. 고생한 보람이 있어.”
우리는 서로 덕담을 나눴다. 표 변호사께서 말했다.
“조변호사가 로앤비에서 일 한 것이 얼마나 되지?”
1999년 말에 제안하고 2000년 1월에 사내벤처로 시작했으니 당시 3년차였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 다시 태평양으로 돌아오는 건 어때? 할 만큼 했잖아?”
“네? 태평양으로 돌아...오라구요?”
음... 언젠가 올 일이었는데.
#3
“태평양 선배들이 자넬 많이 걱정해. 사업을 하는 것도 좋은데, 어차피 자넨 본질이 변호사잖아. 그리고 이해완 CEO와 안기순 변호사는 로앤비 자체를 위해서 태평양에 들어온 거지만 자네는 변호사로서 트레이닝을 했잖아. 자네는 소송 변호사로서도 꽤나 소질이 있고 말야. 자네랑 같이 일했던 이재식(JSL), 황의인(EIH), 황보영(BYH), 이형석(HSL) 변호사 전부 자네는 다시 태평양에 돌아와서 소송 변호사로서 업무를 하는 것이 태평양을 위해서도 낫다는 평가야. 그건 내 생각도 같고.”
표 변호사의 이 말씀이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다.
#4
사실 태평양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괜찮은 것인지. 하지만 나는 그 때 사업을 하고 싶었었다. 그런데 막상 바깥에서 세일즈를 해보니 이 일도 의미가 컸지만 원래 내가 하던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 동기들은 내가 로앤비를 하는 동안, 다들 미국유학을 가고 거기서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현지 로펌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다시 태평양에 돌아와 자기 전공 파트에서 실무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3년간 로앤비 사업에 매진했던 것이다. 동기들과는 완전 다른 루트를 밟은 것이다.
“로앤비는 이제 이해완 CEO와 안기순 변호사가 잘 알아서 할 것 같으니 조 변은 태평양으로 복귀해. 선배들의 조언이니 잘 새겨 듣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선배들이 참 고마웠다.
#5
며칠을 고민하다 로앤비 이해완 CEO에게 말씀드렸다. 이해완 CEO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배신자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시 변호사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픈 열망이 가슴 속에서 샘솟았다.
이해완 CEO는 내 사정을 잘 이해하고, 내가 태평양에 복귀한 후에도 어떤 식으로 로앤비와 협업할 것인지를 정해 보자고 했다.
우선, 교육사업은 내가 계속 강의를 뛰기로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업법무 강의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내가 대부분의 강의를 담당해야 했다. 아직 ID 매출이 큰 규모는 아니었기에 일정기간 계속 교육사업 매출로 이를 메꿔야했다.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강의는 맡아서 하기로 했다.
문제는 ID 판매인데, 이 부분은 내가 태평양 복귀하고 나서도 업체들에게 적극적으로 로앤비를 소개하기로 했다.
세세하게 따져보니 내가 태평양에 복귀하더라도 조금만 시간을 아껴쓰면 로앤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6
2002년 연말.
로앤비에서 이별파티를 열어 주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뽑은 직원들을 두고 나만 태평양으로 돌아간다니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내 삶을 새롭게 다시 멋지게 시작하고픈 생각에 흥분도 되었다.
다시 변호사를 시작하면 이제 예전의 나와는 다른 변호사가 될 거야. 바깥에서 배운 것들을 전부 변호사 업무에 녹여내야지.
이렇게 나의 로앤비 시절은 추억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