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태평양에서 제2의 변호사 인생을 시작하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73) 태평양에서 제2의 변호사 인생을 시작하다

#1

2003년 1월, 다시 태평양으로 출근했다. 3년 만이다. 낯설었다. 우선 어느 부서로 갈 지를 정해야 했는데, 나는 ‘일반 민사소송부’를 지원했다. 태평양 같은 빅 펌의 주니어는 자기 부서를 정할 때 고민이 많다. 우선 대표적으로 소송부서로 갈 거냐 자문부서로 갈 거냐로 나뉘고 그 다음에는 어떤 특정한 전문부서로 갈 건지 아니면 일반적인(general) 부서로 갈 건지를 고민한다. 대체적인 경향은 아주 세분화된 특수 부서(M%A팀, 부동산 금융팀, 국제중재팀)로 가는 것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빅 펌에서 많은 사건을 통해 전문 지식을 습득하게 되면 나만의 전문성을 빨리 키울 수 있고 그 자체가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2

나는 생각이 달랐다. 막상 바깥에서 사업을 해보니 세상은 정말 복잡하면서 복합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세상인데, 어느 한 분야만 깊이깊이 파고 있다는 것은 너무 편향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자문분야가 아닌 소송분야를 택하고 그 중에서도 특정 소송이 아닌 ‘소송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다 하는’ 일반 민사소송부를 지원하기로 했던 것이다.

원래 내가 있던 IP팀은 내가 태평양을 떠난 직후 판사를 하다 조인한 우수한 주니어 변호사인 김지현(GHK) 변호사가 황보영(BYH) 변호사와 이미 3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던 상황이라 내가 IP팀으로 복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인간적인 부담은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3

변호사로 복귀하면서 명함을 새로 만들었는데, 나는 그 명함에 내 휴대폰 번호를 넣어 달라고 총무팀에 말했다. 총무팀은 이런 요청을 하는 변호사가 그 동안 없었기에 내게 다시 확인했다.

“휴대폰 번호 기입하면 안 되도록 방침이 정해진 건 아니죠?”

“아...네. 그런 방침은 없지만...”

“그럼 그냥 넣어주세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옆에 선배가 말했다.

“조 변, 의뢰인들이 밤 10시, 11시에도 막 전화하면 어쩔려구 그러노?”

난 웃으며 말했다.

“밤 10시, 11시에 전화 거는 의뢰인은 얼마나 마음이 다급하면 그러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다급할 때 짠~ 하고 나타나서 답변해 주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하하하”

선배는 나를 스윽 보더니 “너 바깥 생활 하고 오더니 좀 이상하게 변한 거 같다..”며 나를 툭 쳤다. 그렇다. 나는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다르게’ 발전했다.

#4

몇 년간 떠나 있다 다시 일을 하니 새롭고 신났다. 무엇보다 내가 변호사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마음에 부담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지만 매일 매일 로앤비 매출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대폭 줄었다. 그냥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이렇게 그냥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는 얘기를 듣다보면 그 회사의 사정이 머리에 그려졌다. 직원이 몇 명이라고? 그럼 한 달 경비가 최소한 이 정도 들 텐데... 지금 걸려 있는 소송금액이 몇 달치 비용이잖아? 이런 식의 계산이 머리속에서 자동적으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소송금액을 이야기할 때 5억, 10억 이라는 돈이 단순한 산술적인 수치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그 돈이 이 사장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바로 실감이 되었다. 훨씬 감정이입이 되었다고나 할까. 상담을 대하는 자세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 되었다.

#5

또 하나 크게 바뀐 점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예전 변호사 시절에는 법적 질문에 대해서 yes, no를 답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길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정답이란 것은 없었다. 세상은 학교처럼 정답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었다. 끝도 없이 문제 상황이 주어지고, 그 상황을 돌파해 내기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다. 이런 ‘문제해결 마인드 셋’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에 장착된 것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사건을 만나는 일이 그리 즐거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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