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까지 왔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너졌다. 갑자기. 돌이켜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는데, 빈틈도 없었는데. 막판에 그렇게 틀어진다.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아니, 여러 번 겪는다. 그때마다 자문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어디서 실수했나. 그런데 명확하지 않다. 그냥, 일이 어긋났을 뿐이다.
# 때를 읽는다는 것
주역은 때에 관한 책이다. 64괘가 전부 때를 말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늦가을에 피면 어떻게 되나. 시든다. 겨울 추위를 이길 수 없으니까. 자연의 이치다. 거스를 수 없는.
우리는 노력하면 된다고 배웠다. 최선을 다하면 이룬다고 들었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게 있다. 아무리 준비해도 무너지는 게 있다. 때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갔거나.
이건 체념이 아니다. 그냥 인식의 문제다. 모든 걸 내 탓으로만 돌리면 사람이 망가진다. 때를 읽지 못하면 같은 구멍에 계속 빠진다. 95%까지 간 일이 무너졌다면, 어쩌면 나머지 5%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던 거다.
# 사람을 본다는 것
그런데 때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도 있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싹을 틔웠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을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묘이불수, 수이불실. 시작은 좋은데 끝이 없다. 왜 그럴까.
함께 가는 사람이 맞지 않았을 수 있다. 아이템도 좋고, 전략도 탄탄한데, 사람이 틀어지면 일도 틀어진다. 이게 초반엔 잘 안 보인다. 95%까지 와야 보이기 시작한다. 압박이 오면 드러난다.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면 본색이 나온다.
요즘은 더 어렵다. 온라인으로 협업하고, 화상으로 미팅한다. 얼굴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까.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틈이 없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급하게 판단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 다시 시작하는 법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어긋난 일 앞에서.
먼저 때를 기다린다. 성급하게 다시 달려들지 않는다. 농사를 생각해보면 된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거둔다. 겨울에 씨 뿌리는 사람은 없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시장에도 계절이 있다는 걸, 우리는 자꾸 잊는다.
그다음 사람을 다시 본다. 함께 갈 사람이 맞았는지 냉정하게 복기한다. 이번에 어긋난 게 사람 때문이었나, 아니면 정말 때 때문이었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쉽지 않지만 해야 한다.
과정을 되짚는 것도 필요하다. 결과는 좋지 않았어도 과정에서 배운 게 분명 있다. 95%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거기서 본 것들, 느낀 것들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쓰인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모든 것은 피고 진다. 때가 있고 사람이 있다.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읽어야 한다. / 일이 어긋났다고 자책만 하지는 않는다. / 때를 기다리고, 사람을 보고, 다시 시작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