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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8. 2015

​'때'를 맞춘 지혜와 능력의 감춤이야 말로 '겸손'

총명을 숨겨야 할 때 


주역의 36번째 괘는 명이괘이다.


명(明)은 ‘밝음’을 뜻하고 이(夷)는 ‘상(傷)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명이’란 ‘밝은 것이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다. 


어떤 일의 길흉이 궁금해서 점을 쳐보았는데, 이 괘가 나왔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명이 괘 자체에 대한 설명(괘사 ; 卦辭)은 ‘어려움에 처했어도 자신의 뜻을 굳게 지킴이 이롭다.’라고만 되어 있다.

이에 대한 해설서(단사, 상사)에는


(1) '자신의 밝은 지혜를 감추라‘(단사 ;彖辭)


(2) ‘군자는 이러한 암흑시대에 많은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의 총명함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지혜롭게 처신한다.’(상사 ; 象辭)

라고 풀이한다. 즉, 자신의 총명함을 감추고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요즘 같은 자기 PR 시대. 자신의 총명함과 재주높음을 세상에 드높이 알려도 시원찮을 판에 자신의 총명과 재주를 숨기라고? 그리고 그것이 지혜라고?


한비자에 나오는 ‘기자(箕子)’와 ‘비간(比干)’이야기


주왕(기자의 조카, 포악하기로 유명한 왕)은 신하들과 밤낮으로 술자리를 벌였는데, 날짜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향락에 빠졌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에게 날짜를 물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사람을 시켜서 현명하다는 기자에게 물어 보라고 했다. 
기자는 ‘천하의 주인이 되는 사람과 온 나라가 모두 날짜를 잊으면 천하기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온 나라가 모두 모르는데, 나만 혼자 그 것을 안다면 나 자신이 위험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는 자신도 술에 잔뜩 취해서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비간은 주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음란한 행동을 일삼자 목숨을 걸고 충언을 했다.

그러자 주왕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다."며 그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보았다.


삼국지에 나오는 ‘계륵’이야기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의 삼국지 중의 한 장면.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촉(蜀)나라 유비(劉備)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싸우면서 진퇴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밤 늦게 암호를 정하려고 찾아온 부하에게 조조는 그저 계륵(鷄肋 ; 닭의 갈비)이라고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부하는 돌아가 막료들과 계륵이 무슨 뜻인지 상의하였으나 아무도 영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부(主簿)로 있던 양수(楊修)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양수는 "무릇 닭의 갈비는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공은 돌아갈 결정을 내릴 것이다(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고 말하였다. 양수는 계륵이라는 말에서 한중 땅이 계륵과 마찬가지로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지킬 만큼 대단한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것이었다. 조조는 양수가 이처럼 자신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음에 놀라면서도 군심(軍心)을 소요하게 한 죄목으로 양수를 참수하게 했다. 양수는 자신의 총명함으로 인해 명(命)을 제촉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주역 이야기


주역의 모든 괘는 어떤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명이 괘의 경우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위에, 불을 상징하는 이괘(☲)가 아래에 놓여 있는 것으로서, 결국 태양이 땅 아래로 내려가 있는 형국이다. 밝음이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가 있는 형국.

아직은 그 밝음이 땅 속에서 나오기에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야기. 

만약 그 밝음이 너무 빨리 세상에 나오게 될 경우, 뜻하지 않은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인데..

옛사람들이 말하는 3대 불행


정민의의 世設新語(세설신어)에 따르면 다음 3가지를 인생의 3대 불행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첫째, 소년등과(少年登科 :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

둘째, 부형(父兄)의 형세에 기대 좋은 벼슬에 오름

세째, 재주가 높은데 거기다 문장까지 능함.


참 역설적이지 않은가?

특히 재주가 높은데 문장까지 능하다는 부분은 오늘날로 치면 ‘스타인데 엄친아’쯤 되겠다. 얼핏 봐서는 3가지 모두 행운 같은데, 옛사람들은 이를 모두 불행의 카테고리에 넣어 놓았다.


왜일까?

위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만 이루더라도 사람은 교만해 질 수밖에 없고, 그러한 교만함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무서운 화근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사자성어 “난득호도”


중국과 사업을 많이 하는 어느 사장님이 알려 주신 이야기.

중국인들이 가훈으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바로 ‘난득호도(難得糊塗)’

이 말이 나오는 원문은 중국 청나라의 화가 겸 서예가로 유명한 정판교의 글.


“聰明難,糊塗難,由聰明轉入糊塗更難. 放一著,退一步,當下心安,非圖後來福報也”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놔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 마음을 놓아버리면, 편안하다.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써 보답이 올 것이다"


난득호도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리숙해 보이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이 나온 유래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정판교는 정묵이라는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에 문제로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편지를 써서 흥화현 지현에게 부탁해달라는 것이었다.
요즘 말대로 하면 기관에 압력을 좀 넣어주라는 것이었다. 정판교는 서신을 다 읽고 다음과 같이 시를 써서 회신했다.


“천리나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자를 양보하면 또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난득호도(難得糊塗,어리석기도 어렵다)란 글과 흘휴시복(吃虧是福, 손해 보는 것이 복 받는 것이다)라는 두 개의 큰 글자를 써서 보냈다.


정판교




정이천의 풀이


중국의 유학자인 정이천은 ‘지혜를 감춘다’는 것이 단지 자신의 목숨만을 지키려고 비겁하게 처신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자신의 지혜만 옳다고 여겨 모든 것을 시시콜콜 따지고 살피면, 마음 속에 분노가 일어나 관대하고 포용력 있는 균형감을 잃게 되어 사람들을 혼란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주역은 무조건 나아가는 것도 무조건 물러서 있는 것도 답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


명이괘는 '때'가 아님에도 내 지혜와 능력을 뽐낼 경우 화를 당하거나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때'를 맞춘 지혜와 능력의 감춤이야 말로 '겸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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