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4살이 되는 중 1 아이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사실일까?’라는 질문은 조금 버겁기는 하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뭐라도 이야기해 주어야 할 판이다. 2021년 1학기 세 번째 철학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주제인 ‘지식’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 설명했다. ‘기억’과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과 대답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철학적 논의에 가까워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의 정의에 대하여 설명하자 매우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인다.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와 ‘확정된 평가의 표준에 관련하여 유효한 무언가’라는 말 앞에 아이들은 얼어붙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는 충분히 예증을 통해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확정된 평가의 표준에 관련하여 유효한 무언가’는 ‘확정’ ‘평가’ ‘표준’ ‘유효’라는 말을 하나씩 떼어서 이야기하고 예증을 들어 설명하고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단어를 붙여서 문장으로 이야기하니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지난해 배웠던 ‘의지’를 다시 설명한다. 왜냐하면 두 번째 명제의 핵심은 ‘의지’이기 때문이다. 즉 ‘확정된 평가의 표준에 관련하여 유효한 무언가’라는 말은 ‘관찰이나 경험 등을 통해 참이나 믿을만한 것으로 확립된 내용이라는 의미의 사실’을 말하고 여기에는 우리의 ‘의지’가 강력하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맘 때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봄날 새싹은 내가 보려고 해서 ‘보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하게 ‘보이는 것’인가? 나의 의지로 보는 것은, 이미 내 머릿속에 보고 싶어 하는 것의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 형상이 있고, 그것과 유사한 것을 찾을 때(혹은 보일 때)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내 머릿속에 여러 가지 나무나 풀의 새싹 이미지가 있는데 자연에서 유사한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새싹을 내가 보았다고 이야기한다.(즉 내가 ‘보는 것’) 그렇다고 반드시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특정 대상을 보고 있다는 희미한 느낌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의지’에 대한 설명을 하니 오히려 어려워진다는 아이들의 엄살을 기억한다. 14살짜리 아이들은 수업 내내 꿈속을 오가는 기분인 모양이다. 어떤 말은 알다가도 또 어떤 말은 전혀 알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철학수업의 초기 목적인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총량을 쏟아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두렵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돌아보는 경험을 해 보고 거기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2~3학년 아이들은 약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조금은 덜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선입견이 새로운 상황을 가로막는 느낌조차 있었다.
다음 주 주제는 ‘ 선과 악은 어떻게 구별될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