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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29. 2023

일요일 오후


일요일 오후


일요일 오후 1시 11분쯤


1.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한 주일 남았다. 아무래도 봄에는 매화다. 탐매도探梅圖는 매화를 탐하는(몹시 그리워하는) 그림이다. 그전에 맹호연이 묘사한 봄을 보자.


春曉(춘효) 봄 새벽

春眠不覺曉 (춘면불각효) 봄 잠에 새벽에 깨지 못했더니,

處處聞啼鳥 (처처문제조) 곳곳에서 새소리 들리는구나.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간밤에 비바람 소리 들리더니,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 꽃잎 제법 떨어졌구나.


맹호연(孟浩然689-740)의 시다. 봄의 느낌을 이렇게 절묘하게 묘사하다니! 맹호연은 당나라 사람으로 평생 미관말직으로 살았다. 이름은 호이고 자가 호연이다. 도연명陶淵明을 존경했으며, 고독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사랑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시집으로는 『맹호연집』이 있다.


봄을 묘사했던 맹호연이 있는가 하면, 봄이 아직 오기도 전에 봄을 알리는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서는 선비들의 마음을 그린 그림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퍼졌는데 그림의 이름은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이다. 중국의 장안을 두르는 강이름이 파灞이고 그 위 다리가 파교다. 하지만 이 말이 일반화되어 봄을 찾아 나서는 장면이나 그 상황을 묘사한 말이 되었다.


중국을 흠모하는 것이 선비의 원칙처럼 되어 버린 조선시대이니 그 이름 그대로 그린 그림이 많다. 그중 심사정이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 매화는 이를테면 선비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이상일 수 있고 지향점일 수도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비합리적, 비논리적 구조를 말함인지도 모른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탐매도로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은 신잠(申潛, 1491~1554)의 작품이다. 화면의 변색이 심하나 바위, 나무, 인물 모두 세필(細筆)로 그렸고, 바위 사이사이와 대나무 등에 칠해진 녹색이 두드러지며, 긴 화면을 따라 그려진 소재들의 자연스러운 조화 등, 화면 전개에서 구성의 묘가 돋보인다.

(두 개의 그림이 옆으로 붙은 그림이다. 편의상 잘랐다.)


봄을 그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에 봄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기야 먹고살기 바쁜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거의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사족이나 한량들의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삶에 있어 이런 감정을 한 번쯤 가져본들 어떠리…….


신잠의 그림을 보면 뒤에 따르는 시종은 추운 겨울에 맨 몸으로 걸어야 하니, 얼마나 싫어하는지 화면에 그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 앞서 가던 선비는 고개를 돌려 시종에게 어서 오라고 한다. 에이 야속한 양반!!


2.


오전에 문득 이런 음악을 듣는다.


Ten Tenors - Wind of change


https://www.youtube.com/watch?v=v1LMHlcPTe8


1991년,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물론 그 이전 고르바쵸프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 USSR(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해체가 예견되어 있었다. 그러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곳에 독일 출신의 Scorpions라는  Rock Group 이 가서 보고 느낀 것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모스크바는 1000년이 넘는 오래된 도시다. 13세기 이후 강력한 왕국들이 명멸해 간 역사의 도시다. 따라서 곳곳이 문화유적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곳도 많지만 여전히 오래된 도시의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노래는 앞에도 이야기했듯이 본래 독일 출신의 Scorpions의 음악이다. 그런데 호주 출신의 열 명의 클래식 Tenor 가수들이 뭉쳐 만든 Ten Tenors가 노래한다. 느낌이 사뭇 다르다.


모스크바의 지명과 거리이름 등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데 그중 ‘Gor'kii(Gorky)’ 공원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그 주인공 Maksim Gor'kii는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로서 볼셰비키 혁명의 기폭제가 된 Mat’(어머니)이라는 소설을 쓴 사람이다.


3.


역시 아침 결에 들은 음악. 다가올 봄을 생각하며.


Ruslan and Lyudmila Overture. in D major

https://www.youtube.com/watch?v=bB03OJ3nq4I


Mikhail Ivanovich Glinka작곡


러시아 대 문호 푸시킨의 서사시 '루스란과 류드밀라'에 러시아 고전 음악의 아버지 글린카가 작곡한 오페라의 서곡이다.


사실 이곡은 너무나 유명하다. 러시아 풍의 인상적인 첫 부분은 오페라 서곡이 가지는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중간중간 이어지는 관악기들, 현악기들의 합주는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봄의 기운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글린카의 작곡 의도와는 전혀 다르겠지만 음악을 통해 애써 봄을 느끼려는 우리의 생각은 글린카의 의도를 넘어 더없이 자유롭다.


주제의 변주가 반복되지만 5분이 넘지 않는 짧은 곡이다. 아직 칼바람이 부는 날, 그래도 햇살 따스한 창가에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이 음악을 들으면 계절이 바뀔 것임과 그 계절이 희망의 새봄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의 봄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절의 봄도 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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